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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이 다름아닌 ‘정치’다. 비단 국회에서 나랏일을 보는 것만이 정치가 아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이 정치는 가족 간, 학생들 사이에서, 마을 반상회 등에서도 두루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민들을 위한다는 현실정치가 산으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우리 손으로 뽑은 국민의 대표가 지역의 대변인이 돼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길 바라는 기대와는 달리 선거철에 보여 준 지역민들과의 잦은 소통과 지역의 일꾼이 되겠다던 공약과는 반대로 특정 단체나 소수의 이권에 힘쓰는 모습이나 포퓰리즘에 빠진 공허한 정책들, 올바른 취지의 법령을 스스로 거스르는 모습들이 그렇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는 부패한 세력에 맞서는 소신 있는 정치인을 다룬 1939년도 작품이다.

 잭슨시를 대표하는 상원의원이 임기 중 사망하자 주지사는 황급히 후임자를 물색한다. 영향력 있는 의원 페인과 자본가 테일러는 이권이 걸려 있는 댐 건설에 반대하지 않을 인물을 선출하라는 압력을 넣는다. 그 과정에서 정치신인 제퍼슨 스미스가 낙점된다.

 순박한 시골 청년인 스미스는 지역 보이스카웃을 이끄는 리더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선택된 이면에는 꼭두각시처럼 대세에 순응할 거라는 계산이 컸다. 순수한 스미스는 의욕이 넘쳤고, 제대로 된 의정활동을 위해 자신의 관심 분야이자 전문 분야인 아이들을 위한 야영장 설립 안건을 준비한다.

 별 무리 없어 보였던 이 안건은 그러나 커다란 벽에 부딪힌다. 바로 야영장 부지가 댐 건설 지역과 겹쳤던 것이다. 이로써 스미스는 그간 알지 못했던 정치권과 자본이 결탁한 부패한 힘을 정면으로 보게 된다.

 부패한 세력을 폭로하려던 스미스는 오히려 덫에 빠져 오명을 쓰고 제명될 위기에 처한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스미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방법인 필리버스터를 활용해 24시간 동안 댐 공사 저지와 결백을 주장하는 의회 연설을 이어간다.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신념과 정의를 지키려는 용기를 그린 영화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는 프랑크 카프라 감독의 대표작으로 따뜻한 낙관주의가 묻어나는 작품이다.

 감독 스스로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한 이 영화는 오늘날 위대한 미국 영화로 손꼽히는 위상과는 달리 평단과 정치계의 우려 속에 개봉됐다.

 비록 정의와 민주주의의 승리로 귀결되긴 하지만 영화 내내 희화화된 국회의 모습이나 자본에 휘둘려 언론의 자유가 막혀 버리는 장면 등이 국격을 떨어뜨릴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히려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의회 시스템의 정상적인 가동 자체가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시켜 줌을 역설하고 있다.

 후반 40분 동안 펼쳐지는 스미스의 합법적인 의사 진행 방해인 필리버스터는 이 작품의 백미로, 그는 이를 통해 투기 목적으로 진행되는 댐 건설 법안 통과를 저지한다.

 비록 작품의 엔딩은 개인의 양심에 기대어 이상적으로 마무리되긴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 특유의 따뜻한 세계관 속에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한 희망이 있는 곳임을 휴머니즘적 시선으로 전하고 있다. 2019년 기해년 새해, 영화 같은 정치가 만드는 살맛나는 세상을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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