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밤 14시간 30분가량의 검찰 조사를 마치고 귀가했다.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불려 나온 것은 대한민국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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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에 잠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서울=연합뉴스) =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으로서 검찰 조사를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징용소송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사실상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오전 9시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 뒤 곧바로 인근의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해 오전 9시 30분부터 조사를 받았고, 밤 11시 55분께 검찰청사를 빠져나왔다.

 조사를 마친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검찰 포토라인을 지나칠 때와 마찬가지로 굳게 입을 다물고 귀가 차량에 올랐다.

 취재진이 "(오전 기자회견에서) 편견·선입견 없는 시각에서 사건 조명됐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검찰 수사가 그렇다고 보나", "김앤장과 강제징용 재판을 논의했다는 문건 나왔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묵묵부답이었다.

 식사·휴식·조서 검토 시간을 포함한 양 전 대법원장 조사 시간은 약 14시간으로 전직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의 조사 시간보다 짧은 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21시간가량 검찰청사에 머무르다 귀가했다. 두 전직 대통령이 소환 조사를 마친 뒤 검찰청사를 빠져나온 시간은 다음 날 오전 6시가 넘어서였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소환을 앞두고 일찌감치 "밤샘 조사를 지양하겠다"고 밝혀왔다. 한 번에 마무리 짓는 ‘끝장 조사’ 대신 여러 차례 불러 조사하는 ‘살라미 조사’ 방식을 예고했다.

 검찰의 이런 변화에는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과정에서 법원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방식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온 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이날 검찰은 오후 4시까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으로 꼽히는 일제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을 조사한 뒤 법관 블랙리스트,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재판개입 의혹에 대해 물었다.

 또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가 징계 위기에 놓였던 김기영 헌법재판관 관련 사안도 물어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한 일을 알지 못한다" 등의 답변으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검찰에 출석하기 연 대법원 정문 기자회견에서도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지만, 형사적 책임은 부인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르면 이번 주말 다시 검찰에 출석할 전망이다. 두 번째 소환부터는 비공개로 진행된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조사를 모두 마친 뒤 진술 내용 등을 분석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그가 검찰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함에 따라 증거 인멸 우려 등을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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