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경로당 공기청정기 구매보급사업에 지원된 국비 8억 원을 그대로 반납하게 생겼다.

정부 부처는 앞서 보급사업을 벌인 시의 지원대상 확대 요청에 임대가 아닌 구매 등 지원금 교부조건을 고집하는 ‘페이퍼 행정’을 하고 있다.

13일 시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교부한 ‘경로당 공기청정기 보급사업’ 국비 8억6천300만 원 중 8억2천275만 원을 사용하지 못했다. 정부가 국비 25%를 지원하면서 사업목적과 장소를 ‘기기 구매’와 ‘경로당’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시는 교부금이 나올 당시 이미 자체 예산을 확보하고 1천471개 경로당에 관리가 손쉬운 임대방식으로 공기청정기 2천여 대를 설치했다. 이에 시는 정부에 교부조건을 ‘구매 또는 임대’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공기청정기 임대는 ‘지원 불가’로 답변했다.

시는 또 임대한 공기청정기를 구매계약으로 바꿀 수 있는 지 여부를 정부 측에 물었다. 행정안전부는 기존 임대에서 구매계약으로 전환하는 것은 계약법에 근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불가 통보했다.

시는 ‘경로당’으로 제한한 장소만이라도 복지시설 등을 포함한 ‘노인여가시설’로 확대해 달라고 재차 건의했다. 지역노인복지관은 연간 노인이용객이 128만 명에 달해 사업목적에도 부합한다고 수차례 설득했다.

교부조건이 완화되면 지역 내 노인복지관 22곳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할 요량이었다.

관계 부처는 또 다시 묵살했다. 그 배경에는 이 사업 애초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의 쪽지예산으로 시작됐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기청정기 보급사업은 복지부에서 지역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국회 예결위의 요구로 예산이 편성됐다. 이 경우 교부조건을 변경하기 위해 예결위를 다시 거치는 등 절차가 복잡해 담당 부처도 난색을 표하는 모양새다.

결국 국비 8억6천300만 원 중 시가 쓴 예산은 임대가 어려운 옹진군 기기 구매비(70곳·140대) 4천25만 원에 불과하다. 지금도 재가복지시설이나 양로원 등으로 지원대상을 확대하자고 요청하고 있으나 사실상 사업기간이 지난해 말로 끝나 2월이면 잔여금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할 처지다.

한편, 정부의 방침대로 공기청정기를 ‘구매’해 보급한 타 지역에서는 벌써 관리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임대로 추진한 인천에서도 일부 경로당에서는 관리 부실이 확인된다. 복잡한 기기 조작이나 필터관리가 어려운 경로당의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실정(失政)’이라는 지적이다.

남궁형(동구) 시의원은 "공기청정기를 설치한 경로당들을 둘러 보니 관리상태가 엉망이었다"며 "지방분권 시대인데도 지자체의 필요에 따라 국비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 기기 관리비용이나 다른 시설에 쓸 수 있도록 정부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