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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1961)’와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은 뮤지컬영화이자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대표작으로 통한다. 오늘 소개하는 ‘지구가 멈추는 날(1951)’도 와이즈 감독의 숨겨진 걸작이다. 이 영화는 미지의 외계인이 등장하는 SF물로 뮤지컬과 비교하면 낯선 장르적 실험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와이즈 감독의 대표작이 공교롭게도 뮤지컬영화일 뿐, 그는 공포·전쟁·판타지·로맨스·SF 등 다양한 장르에서 기량을 선보여 왔다. 그의 필모그래피 중 우주 모험을 소재로 한 극장판 ‘스타트랙’을 떠올려 보면 사이언스 픽션에 대한 감독의 남다른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은 2008년 동명 리메이크 작품이 개봉했을 만큼 SF영화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체불명의 미확인 비행물체가 지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음이 감지된다. 세계인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이 비행물체는 워싱턴의 공원에 착륙한다. 미끈한 유선형의 우주선 속에서 지구인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외모의 한 남성이 등장해 평화적인 목적으로 방문했음을 알린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도구를 꺼내 건네려는 순간, 당황한 군인이 외계인을 향해 발포한다. 부상으로 정신을 잃은 외계인은 곧바로 병원으로 호송되지만 그는 빠른 회복력으로 건강을 되찾는다.

 외계인은 자신이 지구를 방문한 목적을 밝히기 위해 모든 지도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것을 요청하지만 당시 냉전 갈등으로 이는 쉽지 않았다. 결국 냉전을 비롯한 지구인들의 비이성적 행동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 병원을 탈출한 외계인은 평범한 시민으로 가장해 미국 사회의 일상을 체험하고, 최고의 석학이라 불리는 한 과학자와 만나 자신의 목적을 밝힌다. 이 외계인의 목적은 뜻밖에도 불필요한 핵무기 개발 중단이었다. 이는 지구 내부의 비극만이 아닌 우주의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는 이를 경고하러 온 것이었다. 전쟁과 폭력이 없는 지구, 더 나아가 우주의 평화를 지키고 싶어 하는 이 외계인의 바람은 이뤄질까?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은 기존 사이언스 픽션의 스토리텔링과는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SF는 미지의 외계생명체가 위협을 가해 오지만 결국 우리 손으로 지구를 지켜낸다는 이야기가 보편적이다. 이때 갈등의 축은 외계인의 이질성과 미지의 힘에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외계인은 서구인과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며, 가공할 힘으로 인류를 위협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갈등은 인류 내부에 있었다. 계속되는 전쟁은 국가 간 대립을 초래했고, 결국 냉전체제라는 이념 갈등을 낳았다. 이 영화에서 외계인은 이런 국가 간의 대립을 중재하러 온 조정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분쟁 중단을 촉구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권고하는 외계인은 그렇지 않을 경우 인류가 멸망할 것임을 경고했다.

 이처럼 독특한 서사는 시대적 반영의 산물이다. 원자폭탄의 비극을 경험한 인류는 어리석게도 채 5년도 안 되는 시기에 더 큰 재앙을 부를 수 있는 핵무기의 경쟁적 개발에 혈안이 돼 있었고, 이것이 인류의 종말을 부를 것이라는 공포로 만연한 시기가 1950년이었다. 핵전쟁과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인류의 평화를 기원하는 이 영화의 호소력은 당시 깊은 공감을 형성해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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