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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1921년 4월 15일 인천에는 오전 3시부터 황사현상이 일어나 가시거리가 300m(당시 표현은 ‘米突’)에 불과했고, 1928년 3월 4일에는 오후 2시에서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1.13g/㎡의 황사가 거리를 뒤덮었다. 인천지역 황사기록은 이때부터이나 우리나라 황사기록은 서기 174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조와 조선조 때에도 관련 내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황사를 일컫는 용어를 놓고 여러 주장이 있어 혼란스럽다. 일제강점기에는 황사(黃砂), 황사(黃紗), 흙비(土雨), 모래티끌 등으로 표기했다.

 매일신보 기사에 등장하는 ‘조선에서 속칭하는 흙비(土雨)’라는 표현은 조선시대에는 흙비가 일상 용어였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황사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 이시히로유키는 그의 책에서 ‘당나라 때 발간된 남사에 황사(黃砂), 황사(黃紗)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일본에서 사용하는 황사는 중국에서 수입된 것’이라고 서술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고려시대 사료를 검색한 결과 고려사에는 ‘황애(黃埃)’라는 말이 쓰였으며, 우토(雨土)라는 표현은 56번이나 나타난다. 동인지문오칠(東人之文五七)에 박항(朴恒)과 김구(金坵)가 쓴 글에서 황사(黃紗)가 보이나 이는 사막을 뜻한 표현이었다.

 황사와 미세먼지는 발생 원인과 입자의 크기에서 확연히 다르다. 황사는 내몽골 일대에서 만들어진 흙먼지로 늦겨울에서 봄철에 우리나라를 찾는다. 이와 달리 미세먼지는 산업시설, 운송기관 등에서 발생하며, 고기나 생선을 구울 때에도 생기는 아주 작은 먼지이다. 지름이 10㎛ 이하인 미세먼지, 2.5㎛ 이하인 초미세먼지로 나누어지며, 기상예보도 이에 맞추고 있다.

 미세먼지는 황사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그 폐해는 훨씬 심각하다고 알려져 있다. 미세먼지에는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납과 같은 대기오염 물질이 포함돼 있고, 피부나 폐 깊숙이 침투해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미세먼지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다고 늘 실내에서만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개인적인 대책으로는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 착용 말고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게다가 대부분 1회용 마스크라 구입비용도 만만치 않다.

 기후가 걱정이다. 지난 여름에는 역대 최고, 최장 폭염이라더니 이번 겨울에는 역대 최악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뒤 덮었다. 겨울철에만 나타나는 현상인 줄 알았던 미세먼지가 요즘에는 때를 가리지 않고 극성이다. 하늘이 뿌옇게 변할 정도로 미세먼지가 세상을 뒤덮어버린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집안에 있어도 콧속이 맹맹해질 정도라 바깥 활동은 엄두도 나지 않는다.

 미세먼지 발생 원인을 놓고 여러 가지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명확한 결론은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바람의 영향으로 주변국에서 밀려오는 미세먼지와 더불어 국내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미세먼지는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심해지는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한국과 중국은 한중 환경협력공동위원회를 열고 구체적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국이 보여 왔던 태도를 보면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국은 국민의 건강에 엄청난 피해를 야기하는 미세먼지 감축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만 가동하는 미세먼지 저감대책과 같은 단발성 방안보다는 근본적인 해법을 강구하고, 주변국의 실효성 있는 협조를 이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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