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jpg
▲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청일전쟁(1894년), 러시아·프랑스·독일의 삼국간섭(1895년), 아관파천(1896년) 이래 20세기 들어서면서 러시아와 일본의 갈등은 첨예화됐다. 만주를 차지하고 이를 기정 사실화하려는 러시아와 다시 만주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러시아를 내쫓아야만 하는 일본의 이해는 상충될 수밖에 없었는데, 이처럼 급속히 악화돼 가는 양국의 이해를 조정하기 위한 외교적 담판이 1903년 8월부터 시작됐지만 이들은 자국의 군사력에 의한 식민지 확장이라는 제국주의 야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이나 타협의 가능성은 없었다.

 1903년 12월 30일 일본 각의(閣議)에서는 어떠한 경우라도 조선을 식민지화하겠다는 무단적인 ‘대한방침’을 결의하고 착수 시기만을 노리고 있었다. 일본은 1902년 영일동맹의 체결과 미국의 지지를 배경 삼아 무력을 통한 해결을 결정하는 한편, 조선에 대한 독자적인 식민지화 방침을 굳혔던 것이다. 청일전쟁 후 일본 육군은 두 배 이상 확대됐고, 해군은 1만5천t급 거함을 한꺼번에 네 척이나 건조하는 등 군사력을 강화했다. 조선 강탈과 만주 진출을 위해 러시아를 가상 적국으로 삼아 10년 동안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했던 것이다.

 1904년 1월 23일 조선은 러·일 두 나라 간의 긴장이 고조되고 전쟁의 조짐이 보이자 중외에 엄정중립을 선언했다. 2월 초순부터 인천에 거주하던 일본 거류민들에게는 전쟁이 임박했다는 전보가 속속 전해졌고 기선의 운임과 해상 보험료는 물론 건어물, 백미, 석유, 사탕과 같은 전시 필수품에 속하는 물품 가격이 치솟고 있었다. 6일에는 한일 간의 항로가 두절되는 등 위급한 상황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었다. 1904년 2월 6일 일본은 러시아에 대해 국교단절을 통보하고 정로군(征露軍)과 함께 미리 편성한 조선파견군의 출동령을 내렸다. 8일 오후 인천항에 도착한 파견군은 당일 5시 30분께부터 9일 오전에 인천 상륙을 완료했다. 이때 인천에 거주하는 7천여 명의 일본인들이 횃불을 들어 길을 밝히면서 군인들을 환영했다.

2월 8일 밤, 일본은 선전포고도 없이 요동반도 뤼순(旅順)의 외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함대를 기습 공격했다. 2월 9일 일본 함대사령관은 "러시아 군함은 정오 12시까지 제물포항을 떠나야 하며 출항하지 않으면 오후 4시 이후 정박지에서 공격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오전 10시 러시아 군함의 두 함장은 협의 끝에 교전을 감행하기로 결정했다. 두 군함은 일본함대가 대기 중인 팔미도를 향해 항진, 전투가 시작됐으나 약 40분간 포격전 끝에 큰 손상을 입고 다시 소월미도 부근으로 들어와 정박했다. 그리고 오후 4시께 코레츠호가 먼저 자폭하고 이어 5시께 바리야크호가 뒤를 이었다. 동청철도공사 소속 기선 숭가리호 역시 세창양행 식료품 다수를 적재한 채 자폭했다. 다음 날 2월 10일 일본은 러시아에 정식으로 선전을 포고했다. 일본군이 인천에 정박 중이던 러시아 함정 2척을 손쉽게 격파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그들이 조선의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교가 단절되고 공격을 당했음에도 인천항의 두 러시아 군함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전투태세 역시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인천의 러시아 군함뿐 아니라 서울의 러시아인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일본인들은 1905년 2월 9일을 ‘인천의날’로 정해 기념행사를 거행했으며 1930년 인천 제물포 해전의 주역인 치요다함(千代田艦)이 폐함되자 이 배의 마스트를 해군성에서 양도받아 지금의 자유공원 정상에 세워 놓았다. 코레츠함 자폭 시 파편들이 인천 시내의 축현(杻峴) 부근까지 날아와 사람들이 주워서 기념품으로 했다고 한다.

 러일전쟁은 형식상으로는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었다. 하지만 세계 주요 제국주의 국가들은 거의 모두 직간접적으로 이 전쟁에 개입돼 있었다. 전쟁의 피해를 당해야만 했던 조선과 청나라뿐만 아니라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 당시대의 초강국들이 민감했던 국제정세에 따라 전쟁의 이해득실을 따지며 이합집산했다. ‘0차 세계대전’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100년 전의 일인데도 어쩌면 지금의 현실을 보는 듯해서 섬뜩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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