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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관용과 리더십

정겸 시인/경기시인협회 이사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1월 18일 금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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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겸 시인
정조대왕의 비밀편지가 2세기가 넘는 시간 속에 묻혀 있다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에 의해 ‘정조어찰첩’으로 부활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정조대왕은 심환지에게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까지 개인적 소견을 담은 297통의 친필 편지를 보냈으며 소통의 대상자였던 심환지는 우의정과 판중추부사·좌의정, 우참찬 등을 역임한 조선 후기의 유명한 문신이었다. 편지 내용에는 당시의 정치 상황과 세태, 나라의 현안, 신하들과 관계 등 정조대왕의 정치적 이념과 사상, 인간성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며, 편지글에는 나라 안팎의 정세와 정보에 늘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대책을 여러 계층을 통해 얻어 낸 흔적이 역력하다.

 이 책이 출간된 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혼란스러운 현대 정치 풍조와 문화 그리고 사회에 대한 새로운 혁파를 제시하고 있으며 당시 조선국을 통치했던 정조대왕의 올바른 지도자상을 보여 주는 일종의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아울러 편지 내용 중에는 당파와 파벌로 얼룩진 내밀한 정치 실태와 독자로 하여금 분노를 금치 못하는 내용도 있어 암투와 음모로 얼룩진 우리나라의 비열한 정치판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음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심한 당파 싸움 중이라도 나름 지도자로서의 정도를 지킴으로써 어떤 것이 애국이고 어떤 것이 매국하는 길임을 분별할 수 있는 정치 관료들이었기에 18세기 후반 영토 확장에 혈안이었던 청과 일본의 에도 막부시대에 맞서 이 나라의 명맥을 유지했던 것 같다. 특히, 정조대왕은 할아버지 영조의 뜻을 이어 받아 탕평책을 계승했으며 아버지 장헌세자를 뒤주 안에서 굶어 죽이게 하고 자신의 즉위를 끈질기게 방해했던 정파들에게도 보복정치는 가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남인에 뿌리를 둔 실학파와 노론에 기반을 둔 북학파 등 여러 학파의 장점을 수용하고 그 학풍을 특색 있게 장려해 문운을 진작했으며, 서얼을 등용하고 중인과 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로 이뤄진 위항문학을 적극 지원하는 등 서민 정치의 행보가 뚜렷하다.

 또한, 정조대왕의 편지와 그 속에 나타난 이상적 리더의 가치관은 정치는 물론 대중문화의 키워드가 됐으며 편지를 통해 여론 동향은 물론, 정국 안정을 해칠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했으며 왕과 신하 간 소통의 장으로 마련해 정치적 이념을 달리한 노론 벽파와도 관계하며 국정의 한 축으로도 활용했다. 이와 관련해 벽파계의 지도자인 김종수와 심환지 등을 직접 관리하며 정국을 안정적으로 주도했을 뿐 아니라 편지를 통해 답답함을 호소하고 욕설의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배설의 장으로 이용하는 등 지도자로서의 고독함과 일종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했다.

 우리가 정조대왕을 ‘21세기 부활’이라고 내세우는 것은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소통 폭을 넓혀 대범하고 개혁적인 지도자의 면을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 많은 교훈과 반성의 기회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조대왕은 조선의 근대화를 자주적으로 이루기 위해 과감한 변혁을 단행한 것은 물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던 개혁주의자이기도 했다. 아울러 격동기였던 18세기 말 열린 생각을 갖고 끊임없는 당파 싸움 속에서도 정치적 포용력을 발휘해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두를 포용했던 현군(賢君)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정파와 당파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TV 채널을 돌려 아침 뉴스를 보는 순간, 희망과 따뜻한 기운은 없고 아직도 적폐청산 중이다. 물론 죄를 지은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촛불혁명 이후 3년차가 지나고 있는데 진부하게 지속되는 적폐정산은 이제는 국민들로부터 자칫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다.

 220여 년 전 관용과 포용, 그리고 소통의 미학으로 통치를 한 정조대왕의 리더십이 지금 우리나라 지도자의 가슴에 진정 어떻게 와 닿고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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