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월동 동화마을은 이대로 갈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지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내야 할지, 새로움을 준다면 무엇으로 채울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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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예전에 그러했듯이 유명세를 탔거나 타고 있는 도시 몇 군데를 기웃거리다가 괜찮다 싶으면 베끼듯 가져다가 쓸 수 없는 노릇이다.

 언제까지 관(官)이 모든 것을 끌고 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공무원도 예기치 못한 시행착오를 불러올 수 있다. 분명히 한계도 있다. 남들이 생각지도 않은 아이디어를 별안간 왕창 쏟아낼 수 있는 능력도 힘에 부친다.

 마을 만들기가 무엇인가? 주민 스스로 배우고 깨우쳐서 어우렁더우렁 살아가고자 하는 공간을 조금씩 다듬어 가는 과정이 아닌가. 마을은 생물(生物)이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한꺼번에 모든 구색을 다 갖춘다면 그것은 만들기가 아니라 신의 영역인 ‘창조(創造)다. 땅에 넘어진 자는 결국 그 땅을 딛고 일어서야만 하는 게 사람 살아가는 세상의 이치다. 마찬가지로 마을 만들기는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주인이고, 흥망성쇠도 그 마을 사람들이 짊어져야 할 몫이다. 관은 조력자로 그 주인들이 하는 일을 돕는 것이다.


 인천시 중구 나광호(58)관광진흥실장은 송월동 동화마을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복잡하다. 생각도 많고 할 일도 적잖다. 그럴수록 그는 동화마을이 생길 때를 되돌아본다.

 "인천역 주변 재정비촉진지구의 해제로 송월동은 급속히 슬럼화됐습니다. 주민들의 상실감은 말로 다 못 했죠. 이대로 뒀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중구가 직접 나섰습니다." 구청장의 지시 아래 특화사업으로 관광객이 몰린다는 도시를 찾아다녔다. 부산시 감천마을과 경남 통영시 동피랑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서 동피랑 마을은 좀 특별했다.

 "그때 그렇게 서둘지 않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때는 사실 공무원인 그도 마을 만들기에 내재해 있는 참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지속성이야 어떻든, 차별성이 있든 말든 혹하고 눈길을 끌 만한 소재로 외지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는 것으로 이해했다.

 "4∼5년 전으로 얼마 안 됐지만 송월동 동화마을은 전국에서 가장 성공한 원도심 재생사례로 꼽혔어요. 연간 100만 명이 송월동 동화마을을 찾았으니까요. 다른 지자체나 학교에서도 벤치마킹 장소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주민들의 생활과 삶이 바뀌지 않는 마을재생사업은 환경개선사업으로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나 실장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동화마을을 조성한다고 주민들을 만나고 다닐 때 주민들은 빗물 새는 지붕이나 불편한 화장실을 고쳐 달라고 공무원들에게 으름장을 섞어 가며 애원하다시피 했다.

 그때 설득하는 쪽에서는 벽화 사업만 하면 주민들이 원하는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 말을 돌렸다.

 "동화마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원주민들은 떠나고 없었어요. 땅값이 오르니까 팔고 다른 곳에 빌라를 사서 이사한 것이죠. 새로 들어선 가게도 그래요. 죄다 외지인들입니다."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가고자 하는 주민들 좋자고 벌인 원도심 재생사업이 역효과를 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떠났다. 빌라라도 살 처지가 안 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남는 동네였다. 관광객들은 법석거렸어도 동화마을은 자생력을 서서히 잃어갔다. 나 실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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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들이 마을 만들기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자면 알아야 합니다. 그 앎은 참여 속에서 나옵니다." 나 실장은 동화마을의 새로운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 아직 벽화 그리기에 참여하지 않은 곳을 선정해 동화마을의 크기를 넓힐 작정이다. 그때는 종전에 추진했던 방식과 다를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것이다. 작지만 주민들의 일자리와 소득 창출도 꼼꼼히 챙길 요량이다.

 "일단 1·2 단계 사업으로 조성된 송월동 동화마을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계획입니다. 그 안에서 지속적으로 열 수 있는 축제가 있는지, 주민들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하는 것이 옳은지 챙겨 볼 것입니다."

 나 실장은 주민들이 참여하는 퍼레이드를 생각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많이 모이는 주말에 퍼레이드 형식의 이벤트를 벌인다는 것이다. 송월동 동화마을에서만 볼 수 있는 상품도 개발할 계획이다. 송월동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중요치 않다. 다만 주민들의 아이디어라면 더욱 좋을 뿐이다.

 "송월동 동화마을뿐만 아니라 원도심 재생사업에는 협동조합 등 주민자생단체의 의지와 실천이 중요합니다." 나 실장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협동조합 등 자생단체의 역할과 기능이 아직은 성숙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에게 귀를 기울일 것이다. 주민들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고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묻고 또 물을 것이다. 그것이 송월동 동화마을이 더 높은 단계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글=박정환 기자 hi21@kihoilbo.co.kr

  사진=이승훈 기자 hun@k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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