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지나는 사람이라고 해 봐야 손에 꼽을 정도로 한적했던 송월동에 동화마을이라니! 터무니없다는 소리만 들었죠. 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동화마을 골목대장’이란 칭호까지 받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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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4일 인천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에서 만난 이정선(69)송월동 15통장은 동화마을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첫마디를 꺼냈다.

 그는 "2013년 이전 송월동의 모습은 오후 10시께에는 거주하는 주민들도 지나다니길 꺼려 할 정도였다. 허물어져 가는 집과 무너지기 직전의 담벼락이 즐비한 동네는 굉장히 어둡고 음침했다. 주민들 대부분이 노인이었고, 젊은 사람들은 거의 떠나갔다. 인기척이라고는 대낮에 노인들이 대문 앞에 나와 햇빛을 쬐는 모습이 고작이었다"고 기억했다.

 이 통장은 "하지만 2013년 국토교통부가 주최하고 중구·인하대학교가 주관한 ‘수도권 도시재생대학’ 과정에서 송월동 동화마을팀이 주민참여형 도시 만들기 발표회 대상을 받았다. 당시 북성동(뱀골), 신흥동(옛 수인선 철로)도 경연에 참여했지만 결국 송월동이 선택됐다"며 "그때부터 구와 주민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송월동 동화마을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송월동을 동화마을로 만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동의였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벽화 말고 집 보수를 해 달라, 동화 말고 다른 그림을 그려 달라, 죽어도 동의 못 하겠다는 등 정말 제각각이었다. 2살 때 피난을 내려와 60여 년 이상 송월동 토박이로 산 이 통장도 당시 주민들이 반대하는 마음은 이해했지만 동화마을을 포기할 순 없었다.

 그는 "당시 매일 주민들을 무작정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낡은 벽도 고치고, 후엔 건물도 보수해 살자고 제안했다. 그러다 보니 한 동네 살아도 얼굴을 익히지 못했던 주민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 숟가락 수는 몰라도 나는 알아봐 줄 정도가 됐다"며 "한 집, 두 집 설득해 담벼락에 그림도 그려 놓고 낡은 대문에 칠도 해 주니 반응이 더욱 달라지기 시작했다. 찾아가면 인상 쓰던 노인은 ‘괜찮네’라고 웃어 줬고, 반대하던 어떤 주민들은 우리집도 해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그러면서 동네가 점점 깨끗해졌고, 일부 주민은 생전 하지 않던 집 앞 청소도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 통장은 동네 홀몸노인들이 아프면 병원도 모시고 가고, 수도가 고장 나면 수도관도 고쳐 주기도 했다며 지난날에 흐뭇해했다. 그는 "도배나 수도 고치는 것은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다. 1974년부터 인천시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특히 상수도사업본부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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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선 통장은 어렵게 진행한 40여 가구의 동화마을 1단계 조성사업 이후 조금씩 송월동이 동화 속 이야기처럼 변해 갔다고 했다. 그는 "2014년 40여 가구로 시작한 동화마을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상했다. 사람 구경하려고 가끔 대문을 나선 동네 노인들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한 100여 가구가 넘게 동화 그림을 그려 넣는데 외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동화마을뿐만 아니라 송월동 낙후된 집들을 사진 찍고 동네 노인들과도 대화하고 돌아갔다. 그때부터 동네에 안정감과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며 "이를 시작으로 여러 방송에 나가게 됐고, 주민들의 협조는 말로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적극적이게 됐다. 점점 늘어나는 관광객에 되레 귀찮을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송월동 동화마을이 유명세를 타고 난 뒤 아쉬운 점도 많이 생겨났다고 했다.

 이 통장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주민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늘어나는 쓰레기와 부족한 화장실 탓에 아무 곳에서나 소변을 보는 일부 관광객 때문이었다. 더욱이 노인들은 불이 붙어 있는 담배꽁초에 집이 탈까 노심초사했다"며 "밝은 조명을 설치해 놨더니 새벽 4시에 술 먹고 와서 소리를 지르거나 길거리에 있는 집에 마구 들어가려는 경우도 발생했다.

 최근에는 ‘주민이 살고 있다’라는 작은 팻말도 붙였지만 개선이 시급하게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동화마을 내 화장실 설치가 시급하다. 최근에 어렵게 간이화장실을 설치했지만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라고 걱정했다.

 아울러 "최근 동화마을을 찾는 관광객의 다양성과 원주민, 외부 상인들과의 융합도 중요하다. 동화마을이 유명해지면서 외부 상인들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일부 이기적인 측면도 발생한다. 내 집 앞, 점포 주변 청소 등 사소한 문제다"라며 "이제는 한 동네 주민으로 함께 동화마을을 유지하고 발전하는 방향으로 가야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통장은 "앞으로도 동화마을의 콘셉트나 다양한 변화를 통해 더욱 행복한 송월동 주민이 되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이승훈 기자 hu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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