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wimmy
화장(化粧)발로 송월동이 동화마을로 변장한 지 5년이 지났다. 앞으로 다가올 5년, 송월동 동화마을이 어떤 모습으로 변신해 갈지 궁금하다.

 따지고 보면 송월동 동화마을의 탄생은 전국적으로 세게 바람 불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씨앗으로 삼았다. 늙고 지쳐 가는 오래된 마을을 살리는 방편으로 너나 할 것 없이 지붕과 담벼락에 색깔을 입히던 때였다. 자투리 땅만 보이면 조형물로 채우지 못해 안달하던 시절이었다. 그 흐름에 몸을 맡긴 곳 또한 송월동 동화마을이다.

▲ 트릭아트스토리
 송월동 동화마을이 표본으로 받든 곳 중 하나가 먼저 길을 텄던 경남 통영의 ‘동피랑 벽화마을’이다. 동피랑의 마루 ‘배꾸마당’ 언저리 가팔막에 다랑이 논배미처럼 켜켜이 들러붙은 ‘하꼬방’은 응봉산 자유공원 밑 송월동 마을과 닮아 있었다. 동피랑 아래 ‘강구안(통영항)’을 끼고 있는 중앙시장은 객선과 어선부두 근처에서 장을 열었던 1960∼70년대 북성동 일대 어시장의 광경들을 떠올리게 했다.

 송월동 동화마을의 궤적은 동피랑 벽화마을과 포개졌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2007년 정부의 지역혁신사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싹을 틔웠다. 지방의제인 ‘푸른통영21’ 사무국이 사업 신청으로 예산 3천만 원을 받으면서 탄력을 받았다. 사업 마감 기한에 쫓겼던 사무국은 상금 300만 원을 내걸고 벽화를 그릴 미술동호회를 모집했다. 애초 주민 참여와 공감(共感)은 없었다. 송월동 동화마을도 철저하게 중구의 관(官) 주도형이었다. 벽화 그리기도 화가를 직업으로 삼는 기성 작가들이 참여했다. 왜 담벼락에 그림이 동화의 등장인물이어야 하는지 주민 대부분은 까맣게 몰랐다. 송월동의 역사성과 장소성은 이국풍으로 덧칠한 ‘동화마을’의 이름 앞에 말끔히 지워졌다.

▲ 미녀와 야수
 이제 송월동의 동화마을은 ‘지속성’과 ‘새로움’ 앞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담벼락에 덧댄 나무판자 위 그림은 색이 바래고 들뜨고 있다. 양철 소재가 아니면 습기 많은 그늘에서 얼마 버티기 힘들다. 중구는 동화마을 유지관리비로 연간 7천만 원 정도를 쓰고 있다. 그렇다고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벽화에 칠만 새롭게 할 수도 없는 일이다. 관광객들은 동화를 주제로 송월동의 그림에 물리기 시작했다.

 찾는 사람들이 서서히 빠지고 있다. 2015년 7월부터 중구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트릭아트스토리의 관람객과 입장료 수입을 보면 대강 짐작할 수 있다. 2016년 6만7천922명(수입금 2억5천775만 원)에서 2017년 4만8천815명(1억9천646만 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8월까지 3만3천936명(1억2천893만 원)이었다.

▲ 흥부와 놀부
 바뀌지 않는 모방에도 실증이 난다. 송월동 동화마을 언덕배기 골목 귀퉁이에는 언약의 상징물인 자물쇠 걸이 장식물이 녹슨 채 덩그러니 있다. 2016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인기를 끌며 촬영지인 송도석산의 그것을 본떴다. 관광객들에게 이미 한물 지나간 관심 밖의 낡은 소품일 뿐이다.

 먹거리도 볼거리처럼 특색 없기는 매한가지다. 초창기 사람들이 몰리자 생긴 거라고는 겉만 그럴듯한 카페와 출처조차 불분명한 퓨전 식당들뿐이다. 독특한 조리법으로 특허까지 받은 돌고래 피자를 파는 가게는 초창기 2년 동안 손님들의 발길이 끊길 줄 몰랐다. 피자 맛을 보려는 관광객들은 기다리는 데 기꺼이 1시간 30분을 투자했다. 지금은 1시간 30분은커녕 가자마자 금세 살 수 있을 만큼 썰렁하다. 2년 전 3.3㎡당 1천500만 원을 호가하던 돌고래 피자 가게 땅값은 이제 매매가를 묻는 사람들조차 없다.

▲ 아프리카 기린
 장사가 된다 싶으니 옆 동네 차이나타운 주인들은 가게를 차려 동화마을로 밀고 들어왔다. 대수롭지 않은 메뉴로 상점 수를 늘렸다. 새로운 관광객 창출 없이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이 서로 찢어 먹기 하고 있는 모양새다. 장신구를 파는 가게도 서울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질구레한 소품들로 채우고 있다. 동화마을 상인 회원들이 줄고 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회원이 20명까지 있었다. 지금은 회원들이 떨어져 나가 12명 정도다.

 동네 사람들은 동네 사람들대로 불만이다. 동화마을에 공중 화장실이라고는 트릭아트스토리가 유일하다. 아주 다급하거나 염치없는 관광객들이 후미진 골목길에 들어가 담벼락이나 대문 앞에 소변을 보는 일까지 있다. 소리를 지르거나 시끄럽게 떠들고 다니는 단체관광객들은 다반사다. 마시다 만 커피 종이 컵을 대문 옆 벽에 쑤셔 박지를 않나, 음료수 빈 깡통을 냅다 발길질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민들은 골치가 아프다.

 주민협의회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은 협동조합은 팔짱만 끼고 멀뚱거리고 있다. 소일거리로 용돈벌이라도 하라며 주민들을 안내요원과 질서요원들로 길러내고 배치할 법도 한데 무심하다. 동네를 돌면서 송월동이 지나온 역사와 동화마을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을 설명하는 해설사조차 키우지 못하고 있다. 5년이 지났지만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곳이 송월동 동화마을이다.

▲ 신데렐라와 호박마차
 서울역 고가를 공중 정원길로 꾸며 ‘서울로’를 조성한 서울시는 주변 주인들을 방범과 청소 도우미로 활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주민들에게 나무를 기르고 가꾸는 법을 가르쳐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송월동 동화마을도 그림 그리는 법을 주민들에게 가르쳐 간단한 벽화 손질을 맡기는 방법도 있다.

 마을 공동판매점도 그렇고 그런 소품들을 팔 게 아니라 송월동의 역사성이 깃든 상품을 내놓을 수 있다. 이를테면 옛 인천기상대의 모습이 새겨진 양산이나 우산들을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전시·판매하는 것이다. 동네 가로등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철재 기둥이 아니라 옛 나무 전봇대에 원통 변압기를 LED 광고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동화마을의 가게나 그 주변의 업체 등을 소개할 수도 있다. 송월동에는 인천의 첫 전기회사인 ‘인천전기’가 있었다. 송월동에 있었던 옛 조일양조의 상표 ‘금강’도 활용할 만하다. 카페나 음식점에서 파는 음료수 잔이나 병에 금강의 로고를 새겨도 괜찮을 듯하다. 그 수익금의 일부를 주민협의회나 협동조합에 되돌려 주는 것이다. 이왕이면 송월동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동화 속 주인공처럼 치장하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를 주자. 의상과 액세서리는 협동조합에서 사용료를 받고 빌려주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처럼 말이다.

 중구는 동화마을 조성 3단계 사업으로 아직 벽화가 없는 45번길을 마음에 두고 있다. ‘어린왕자’ 골목으로 꾸밀 생각이다. 이미 12가구 중 7∼8가구 주민들에게 어느 정도 설명도 하고 긍정적인 답변도 들었다.

 송월동 동화마을의 지속발전 기반은 공감과 주민 참여다.

 박정환 기자 hi21@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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