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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석 인천대 교수
정치지리학은 정치현상을 공간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학문인데, 한 나라가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를 설명하는 정치지리학 이론이 있다. 그 중 하나인 매킨더(Mackinder, H, J.)의 ‘심장지역이론’은 발틱해 ∼ 다뉴브강 중하류 흑해 ∼ 소아시아 아르메니아∼ 이란, 티벳, 몽고를 연결하는 선 안의 유라시아대륙 지역이 심장지역이라 부르고, 이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유용한 자원을 가진 광대한 영토로서 철도를 통해 대륙의 모든 연해 지역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우세한 지역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대비되는 이론으로 스파이크맨(Spykman, N. J)의 ‘주변지역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심장지역이란 지역은 기후가 나빠 경작에 불리하고 유용한 자원도 심장지역 핵심부에 많은 것은 아니며 연해지역으로의 접근도 불리하나, 그와 반대로 유라시아대륙 연해의 주변지역은 강수량이 풍부해 경작에 유리하고, 인구가 밀집돼 있으며 해상교통이 좋아 외부 대양과 결합이 용이하기 때문에 주변지역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전략적 위치이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는 유라시아대륙의 동단에 위치한 주변지역에 속하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접하는 접속적 위치이자 그 세력이 연결되는 교량적 위치에 있다. 해륙 양대 세력의 접속적 위치는 평화로운 시대에는 대륙과 해양으로 진출하면서 번영을 구가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나, 갈등 상황에서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충돌하는 지역이 돼 곧잘 분쟁에 휘말릴 수 있는 단점을 가진다. 이 때문에 우리 한국인은 확고한 국가안보 의식을 갖고 국가는 지혜롭고 신중한 안보전략을 수립해 정책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반면교사로서의 교훈을 한 세기 전 우리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세기 말 서구 열강이 동아시아로 진출하고, 후발 제국주의 국가 청(淸)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충돌함으로써 조선(후에 대한제국)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당시 국제정세는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특히 이웃 청국, 일본과 러시아의 대립과 침략으로 당시 국제환경에서 조선은 청-일과 러-일의 대립구조 구조에 놓여 국가위상은 매우 불안정했다. 당시 외국 인사들의 한국 인식은 매우 비관적인 것이었다. 서울 주재 영국 총영사 힐리어(Walter C. Hillier)는 "한국정부는 부패가 너무 만연해서 모든 공공기관을 일본이나 그 외 다른 외국의 감독 아래 두지 않는 한 개선의 희망이 없으며, 이것이 유일한 한국 문제의 해결 방안이다"라고 했다. 서울 주재 미 공사 앨런(Allen)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옛말이고 아침이 지난 차가운 잿빛의 땅으로, 러일전쟁 결과가 어떻게 되든 한국은 그 승자에게 먹힐 것이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대한제국)은 국제정세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 채 대책에 소홀했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외세 열강의 기망, 나라에 퍼진 자주독립이란 분위기 그리고 외교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

 외세 열강은 외교적 수사로 당대인을 기망했다. 열강은 실제로는 야심을 실현하고자 노력하면서도 표면으로는 한국의 독립을 지지했는데 당대 위정자들은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독립협회는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신문을 발간해 독립정신을 고취했고, 국왕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임을 선포했으며 나라의 대외사절을 파견하기도 했으나, 국력의 배양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조선은 서구 열강과 수교를 하면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같은 강국과는 수호통상조약 속에 둔 제3국과 분쟁이 발생할 경우 중재한다는 이른바 ‘거중조정’ 규정을 과신하고, 열강을 끌어들여 세력 균형을 추구하기도 했으나 장기적 안목을 갖고 추진된 전략이 아니었기 때문에, 외교정책은 실패했다. 한국 외교정책에 대한 역저를 낸 바 있는 고(故) 이호재 교수는 당시 갈등을 불러 일으키는 인접 국가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상업적 이해관계를 가진 역외국가인 서구 열강에게 이권을 공여하고서라도 정치적 이해관계를 갖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교훈은 비록 오늘날 대한민국이 중강국의 반열에 올라 있지만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가진 주변국으로부터 안전보장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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