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瓜田不納履 李下不整冠). 외밭에서는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는 뜻이다. 외나 오얏을 딴다는 의심을 받기 십상이니 괜한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은 삼가라는 가르침(?)이다.

본인이 당적을 내려놓는다는 표현을 썼으니 이제 무소속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목포 부동산 투기 의혹이 연일 매스컴과 사회관계망서비스(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철 지난 구문(舊聞 )을 들고나와 ‘단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채 죽기살기로 손 의원 물어뜯기에 나서고 있는 상당수 언론과 모든 걸 걸고 결사항전하겠다는 손 의원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형국이다. 흔히 손 의원이 ‘여의도 문법’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한다. 혹자는 손 의원이 여의도 문법을 거부하는 차원을 넘어 파괴했다고까지 말한다. 국문법이 지역별로, 직업별로 다르게 적용되는 지는 모를 일이나 그의 태도는 여느 정치인들과는 사뭇 다르다.

여의도 문법은 한마디로 천간(天干)의 두 번째인 ‘을’의 문법이 아니라 맨 마지막인 ‘계’의 문법이다. 언론의 비판대상이 됐을 때 사실 여부를 떠나 일단 사과하고 국으로 찌그러져(?) 있으라는 얘기다. ‘기자님들의 힘자랑이 끝날 때까지’ 꿈틀거리지도 말라는 의미다.

여기서 여의도 문법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여하튼 손 의원은 언론의 융탄폭격을 받으면서도 기존의 여의도 문법을 거부하고 정면승부를 택했다. 맞짱 뜨자고 높이는 목청이 호기롭다.

그의 목포 부동산 매입이 투기였는지, 유별난 문화유산 사랑의 발로였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잘못 걸렸다며 꼬리를 내리기보다는 ‘넌 뭘 걸 수 있는데’라며 맞붙는 패기에서 그의 진정성을 일정 부분 엿볼 뿐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브랜드 네이밍 작가였던 그가 자신이 느끼는 ‘부당한 공격’에 대처하는 방식은 그랬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과리지혐’(瓜李之嫌)이라는 수동적 보신주의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능동적 소신 사이에서 좌고우면하며 갈등한다. 외를 땄다는 오해를 사더라도 신발이 벗겨지면 고쳐 신어야 하고, 설령 구더기가 끓더라도 담가야 할 장은 담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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