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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지난해 국민들이 연중 내내 사법농단, 갑질 등 각종 적폐 뉴스에 시달렸었는데, 올해에도 연초부터 불쾌한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어 ‘삼한사미(3일은 춥고 4일은 미세먼지가 심하다는 신조어)’에 짜증나는 국민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중하고 있다.

 경북 예천의 군의원들이 해외연수 중 가이드 폭행과 추태로 나라 망신을 시켰다는 뉴스, 스포츠계의 선수 폭행·성폭행 추문에 관한 뉴스 등 마치 긴 막대기로 저수지 밑바닥을 휘저은 것처럼 온갖 쓰레기들이 한꺼번에 물 위로 떠오른 듯하다. 심각한 것은 지금 우리 주변에 악취를 풍기며 떠오른 쓰레기들이 어제오늘에 생긴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은폐·방치되며 고질적으로 쌓여온 것들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것들도 이른바 ‘적폐(積幣)’에 해당한다. 도대체 우리 사회의 적폐들을 해소하는 데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고 지루하더라도 적폐 청산 노력을 도중에 중단해서는 안 된다.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악취를 참아내며 이를 씻어내려는 노력을 줄기차게 이어 가야 한다.

 국민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면서 많은 청원·제안을 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과 열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된다. ‘청와대 국민청원’은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은 2017년 8월 17일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모토하에 개설한 인터넷 게시판인데, 하루 1천 건 내외의 청원이 쏟아질 만큼 활용도가 높다.

 이처럼 국민과 국가 간의 소통 통로로서 인기를 얻고 있지만, 비판적인 견해도 존재한다. 청와대 권한 밖의 사안(국회에서 입법을 해야 하는 사안, 법원의 재판에 관한 사안 등), 특정인을 비방하는 내용 등이 제한 없이 게시됨으로써 갈등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는 비판 등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은 유익한 점이 많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국민주권주의 실천 방식으로서 매우 유용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청원(請願)이란 원래 ‘어떤 문제가 해결되도록 원하여 청함’을 의미하는데, 법적으로는 ‘국민이 정부기관에 대해 어떤 사안의 처리를 요구하는 일’을 뜻한다.

 우리 헌법 제26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 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2항은 "국가는 청원에 대하여 심사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헌법은 청원권을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1961년에 ‘청원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청원사항과 청원방법·절차 등이 제한적이어서 크게 활용되지 않는다. 한편, 종래 국민들이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하더라도 청와대는 민원처리를 정부 부처에 떠넘기고 정부 부처는 또다시 지자체나 산하 공공기관에 떠넘기는 사례가 많았다. 시간만 많이 걸리고 실질적인 해결도 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민원처리 과정에서 민원인의 신원이 노출돼 불이익을 받게 되는 당혹스런 사례도 많았다. 그에 비하면 ‘청와대 국민청원’은 공개성·비실명성·사안의 무제한성 등으로 인해 인기가 매우 높고, ‘직접민주주의를 확장한다’는 찬사를 얻고 있다.

 특히 우리들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어젠다’를 설정하고 해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사회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계기로 작용한다. 음주운전자 처벌 강화에 관한 ‘윤창호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요즘 경기도 등 여러 지자체들도 청원게시판을 앞다퉈 도입하고 있어 우리는 현재 단군 이래 가장 자유롭고 폭넓게 청원권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는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국민청원 시즌2’를 준비 중이다. 청원에 대한 답변 기준을 현행 ‘20만 명’보다 낮추는 등 더 발전적 방향으로 업그레이드되기 바라며, 약간의 부작용이 염려된다고 해서 게시·공개요건을 강화(실명화, 내용제한 등)함으로써 국민 청원의 순기능이 훼손되지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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