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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식 편집국 부국장
얼마 전 북성포구를 찾았다. 지금은 고깃배 몇 척이 오래된 포구를 지키는 보잘 것 없는 곳이지만 내게는 어릴 적 추억의 상당부분을 간직한 타임캡슐 같은 곳이다. 원목과 갯벌, 바다가 하나의 놀이동산처럼 인식됐고 또 가난한 서민들이 겨울을 준비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 일대는 준설토투기장 매립공사로 곧 사라진다. 세상에서 없어지기 전에 눈으로라도 담아보고자 40여 년이 지나서야 찾았다. 예전과 달라진 모습은 별로 없다. 상쾌하지 않은 뻘 냄새도 그때 그대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포구 일대를 가득 메웠던 원목더미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지켰던 갯벌이 광활하게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생소하다. 육중한 원목더미에 깔려 볼 수 없었던 무진장하게 펼쳐진 갯벌을 40여 년이 지나서야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빨갛게 물들어가는 석양에 비친 북성포구의 쓸쓸한 모습을 보면서 기억은 4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내가 살던 만석동과 북성포구는 지척이다. 만석동은 한국전쟁 후 피난 온 황해도 사람들이 정착한 곳이다. 만석동에는 대성목재라는 큰 목재공장이 있었다. 공장 뒤에는 북성포구와 연결되는 바다가 있었고 그 바다에는 어마어마한 저목장(貯木場)이 운영됐다. 저목장에는 지름 1~2m, 길이 20m가량의 거대한 수입 원목이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띄워졌었다. 까까머리 국민학생은 여름이면 친구들과 낚싯대를 둘러매고 원목이 가득 들어찬 북성포구를 찾는다. 빈집을 지켜야 하는 꼬마들은 북성포구에 널린 원목 사이를 뛰어다니며 수영을 하거나 망둥이 낚시를 하며 여름을 보낸다.

 썰물 때 원목더미 사이로 드러난 갯벌에서 갯지렁이를 잡아 밀물 때 망둥이 낚을 미끼로 쓴다. 망둥이는 말렸다 겨울에 먹거나 회를 치기도 하고 대성목재 인부들에게 팔아 용돈을 만들기도 했다. 몇 시간을 잡은 100여 마리의 망둥이들을 노동력도 안 나오는 헐값에 넘겼지만 그래도 용돈으로 쓰기에는 제법 쏠쏠했다. 밀물이 들기 시작하면 부지런히 망둥이를 잡아 올리고 어느 정도 잡았다 싶으면 물놀이가 시작된다. 만조로 가득한 바다는 수영장이 되고 원목은 아이들이 아슬아슬하게 뛰어다니는 운동장이 된다. 바다를 가득 메운 원목은 이곳 주민들에게 저주와 희망이 뒤섞인 존재였다. 부모들이 돌볼 수 없는 아이들은 한여름 원목 위를 뛰어 놀다 원목 사이에 빠져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고정되지 않은 원목은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만조 때 물위에서는 쉽게 움직인다. 그것을 밟고 뛰어다니다 원목 사이로 빠지면 닫힌 출입문처럼 다시 나오기 어렵다. 마치 악마의 아가리처럼 매년 그렇게 아이들을 잡아 삼켰다. 그렇게 아이들이 죽어나가도 매년 여름이면 북성포구 일대 원목 위에서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바다 위를 다시 시끄럽게 했다. 위험하지만 아이들을 돌볼 어른도 없고 달리 할 놀이도 없었다. 그래서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부모들의 안타까운 저주가 서린 곳이다. 원목은 주민들에게 희망이기도 했다. 겨울만 되면 몸서리치며 떠올리는 기억이 있다. 땔감 모으기다. 예전에는 구들장을 데울 땔감을 확보하는 게 큰일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추위도 빨리 오고, 왜 그렇게 추웠는지 모른다.

 여름이 지나면 만석동 사람들은 다시 바닷가로 몰려갔다. 원목껍질을 벗겨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당시 주민들 집에는 ‘빠루’라는 도구가 하나씩 꼭 있었다. 못을 뽑거나 지렛대로 사용하는 도구지만 만석동 주민들에게는 원목껍질을 벗기는 도구다. 온 식구가 매달려 한겨울을 지낼 만큼의 껍질을 벗겨내고 여분으로 더 벗겨 이웃에게 팔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만석동 어느 골목을 가더라도 원목껍질을 쌓아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개발독재시대 재개발로 강제 철거당하는 도시 빈민의 고통을 그려낸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도 대성목재 저목장 모습이 그려진다.

 "저목장에 바닷물이 들어오면 원목들이 떠올랐다. 코끼리지게차가 그 원목들을 건져 올렸다. 해방동 주민들은 인도네시아에 내린 햇빛을 받아 크게 자란 인도네시아산 원목의 껍질을 벗겼다. 사람들은 그 껍질을 벗겨다 땔감으로 썼다. 남는 것은 팔았다." 북성포구는 그렇게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담고 있다. 떼어내고 싶어도 떼어지지 않는 가난한 삶과 세상물정 모르는 꼬마들의 놀이가 이어진 곳이었지만 이달부터 매립이 시작되면 사라진 기억 속의 또 다른 일부가 될 것이다. "손대지 말고 그냥 놔두라"고 꼭 부여잡고 싶지만 욕심일 뿐이다. 잘 가라 내 추억의 한 부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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