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단적으로 보여 준 불행한 사건이었다. 당시 29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고 40명이 부상했을 만큼 큰 피해를 안겼다.

화재가 커진 데는 엉망인 건물 비상구 관리, 미작동 소화시설(스프링클러 등), 부실한 초기 대응, 도로 불법 주정차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불법 주정차 문제는 화재 진압 초기에 불이 난 현장까지 소방차량 등 진압장비의 진입을 방해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쳐 화마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에 소방당국은 소방차 긴급출동을 방해하는 차량을 훼손 여부와 관계없이 제거·이동할 수 있도록 소방기본법을 개정했다. 개정안은 소방차 통행과 소방활동을 방해한 불법 주정차 차량은 보상에서 제외한 게 골자다.

도내에서 화재 발생 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역시 비상구 폐쇄, 소방시설 차단, 불법 주차 등 3대 소방안전 저해행위 단속을 전담하는 ‘119소방안전패트롤’을 출범했다.

그런데 국내 도로 여건상 주차공간이 부족한 실정에서 운전자들은 ‘차량을 댈 데가 없다’며 불법 주정차를 일삼고 있다.

지난 23일 오후 7시께 수원시 영통구 광교신도시 내 카페거리. 상가주택 및 대형 상가 주변 이면도로에 불법 주정차 차량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시는 광교 카페거리에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자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초까지 광교지구 5개소에 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24시간 운영하는 공영주차장 5곳을 조성해 총 241면의 주차공간을 확보한 바 있다.

하지만 상가주택 입주자가 귀가하거나 손님들이 몰려 건물 주차장 및 공영주차장에 차량을 세워 놓을 여유 부지가 부족해지자 주변 눈치를 살핀 후 이중 주차하는 운전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도로 폭이 좁아지면서 마주오는 차량 통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이면도로에 혼잡이 빚어졌다. 소방차 폭이 대형(8.5t) 약 3m, 중형(5t) 약 2.6m, 소형(3.5t) 약 2.5m인 점을 감안하면 화재 시 소방차 통행은 어려워 보였다.

회사원 강모(30·용인시 수지구)씨는 "멀리 차량을 대놓고 걸어오기 불편하다 보니 주차할 데가 마땅치 않으면 주차 단속에 안 걸릴 만한 공간에 슬쩍 대놓는다"고 말했다.

운전자 불법 주정차 인식 수준은 2013년 경기연구원이 낸 ‘불법 주차 문제의 해법:주민에게 물어보자’ 자료집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시민 3명 중 1명은 주차공간이 부족하면 단속하지 않을 곳을 찾아 불법 주차한다고 응답했다.

도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불법 주차는 운전자 편의에 의해 일어나지만, 이로 인해 타인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며 "차량을 공영주차장에 주차하는 게 가장 좋지만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소방차 통행에 방해가 없을 만큼만 주차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종대 기자 pjd@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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