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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전 세계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오늘날까지 변함없이 사랑받아온 셸 실버스타인의 대표작인 「아낌없이 주는 나무(The Giving Tree)」라는 그림책이 있다.

 "친구인 사과나무와 소년은 늘 함께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자라면서 돈이 필요해지자 나무의 열매를 모두 가져갔다. 그리고는 나무의 가지를 잘라 집도 지었다. 어른이 되어 멀리 떠나고 싶어 하는 소년에게 나무는 또 자신의 몸통을 내주었고, 소년은 배를 만들어 그 배를 타고 떠나 버렸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소년은 노인이 되어 돌아와 마지막으로 쉴 곳을 찾아 그 나무에게로 돌아왔다. 나무는 그루터기만 겨우 남은 자신의 몸을 내어주었고 노인은 그 위에 걸터 앉았다. 나무는 행복했다."

 친구인 사과나무와 소년의 일생을 단순한 줄거리로 그렸지만 감동적인 스토리였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받아가기만 하는 소년의 이야기는 상대방이나 이웃보다는 자신의 이익만을 더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줬다.

 나무의사라는 호칭을 듣고 있는 우종영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어릴 적 꿈인 천문학자의 꿈을 포기하고 방황을 하다가 30세 가까이 돼서야 결혼을 하고 작은 땅을 빌려 농사를 시작하지만 3년 만에 경험 부족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망연자실하고 북한산에 올라 삶을 놓아 버리고자 할 때, 문득 아슬아슬 절벽에 힘겹게 버티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나도 사는데, 너는 왜 아까운 생명을 포기하려 하는 거니?"

 한번 뿌리를 내리면 그곳이 아무리 험한 곳이라 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떠날 수 없는 나무, 그렇다고 결코 불평이나 포기하는 일도 없이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를 보고 삶을 포기하려고 했던 자기 자신이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고 한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아내와 조그만 화원을 시작했다. 처음엔 화분 몇 개로 시작했지만 나무를 사랑하는 그의 정성 때문인지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드디어 화원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안정을 찾게 되자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나무를 관찰하고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큰 도로 옆 콘크리트 박스에 갇혀 뿌리가 허옇게 드러나 있는 나무를 보고 지금까지는 나무를 심을 때 늘 ‘어떻게 하면 보기 좋게 심을까?’만을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무도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보다는 나무 입장에서 보살피고 치료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그 후 새를 대신해서 벌레를 잡아주고, 바람을 대신해서 가지를 잘라주기도 하고, 하늘을 대신해서 물을 뿌려주며 모든 악조건에 노출돼 있는 아픈 나무들을 찾아 다니며 보살피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년을 보내다 보니 그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해서 ‘나무의사’라는 호칭을 얻게 됐다. 지금도 그는 아프고 병든 나무들이 자꾸 늘어만 간다고 걱정이 많다고 한다. 열심히 치료를 해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나무를 볼 때마다 그는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한다. 그는 늘 나무에게서 인생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겨울이 되면 가진 걸 모두 버리고 앙상한 몸으로 견디는 인내와 초연함을 배웠다고도 한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해마다 꽃을 피워 내고 열매까지 맺는 끈질김도 배웠다고 한다. 정규 학력이 중졸에 불과한 그는 30년 넘게 병든 나무들을 치료하면서 나무들의 배려와 너그러움에서 자신이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고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소나무의 일종인 당송나무 숲이 있다. 높이가 대략 90m나 되는 큰 나무로 지구상의 모든 식물 중에서도 가장 웅장한 식물에 속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식물의 키가 클수록 그 뿌리는 단단하고 깊이 박혀 있게 마련인데 당송의 뿌리는 지표면에 거의 붙어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키가 어마어마하게 큰데도 뿌리가 깊지 않아 큰 바람이 불면 쉽게 뿌리째 뽑혀버릴 텐데 캘리포니아의 당송나무는 끄떡없이 크고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항상 큰 숲을 이루고 있는 모든 당송나무들의 뿌리가 서로 단단히 연결돼 있기 때문에 허리케인이 불어와도 몇 천 그루의 나무 뿌리가 서로 촘촘히 이어져 있는 당송나무 숲에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없이 서로 단단하게 의지하며 돕는 나무가 늘 이웃을 헐뜯고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들려주는 놀라운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마주 보며 두 손을 잡으세요. 양팔을 들어 든든하게 어깨동무를 해 보세요. 그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결코 두렵지 않고 이겨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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