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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종현 국민대 겸임교수
# 급격히 확산되는 역사영화

 한국의 한류가 최근에는 사회적 트렌드가 되고 있는데 그 중에도 역사적 소재를 토대로 부분적 각색을 통한 팩션(faction, fact와 fiction의 합성어) 형태의 영화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한국 영화 최고 영예인 1천만 관객을 동원한 팩션 영화만도 ‘암살’, ‘명량’,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많이 존재하고 있다. 영화는 아니지만 드라마 분야에서도 민비의 일대기를 재조명한 ‘명성황후’, ‘대장금’ 등 많은 작품이 출연 배우의 농익은 연기와 더불어 한류선풍을 주도하고 있다. 1천만 관객은 아니지만 ‘인천상륙작전’, ‘밀정’, ‘덕혜옹주’, ‘역린’ 등도 최근 개봉된 화제의 역사영화로 기억된다. 특히 이 같은 영화, 드라마분야의 한류 약진은 1980년대 홍콩 영화로 대표되는 느와르 영화를 제치고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문화 선진국의 선봉이 되고 있다.

 주변의 일본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조차 앞서가는 한국 영화시장의 한류 콘텐츠가 4차 산업혁명의 유튜브, 넷플릭스 선풍으로 훨씬 앞서가는 한국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최근 미국 넷플릭스의 투자로 인기를 모은 ‘미스터 선샤인’도 유사한 팩션 형태의 드라마로 케이블TV 연속 드라마가 지상파 방송 드라마 시청률을 능가하는 이변을 낳기도 하는 등 역사 소재 드라마 선풍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 역사 왜곡 바로잡기

 영화는 스토리 구성과 방법이 작가와 감독의 창의력에 크게 의존하는 창작 영역으로 문학에 대해 그다지 많은 식견이 없는 본인이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 언급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이 같은 팩션 영화가 가져오는 파급효과에 대해서는 한 번쯤 고민할 단계가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교육제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이에 따라 때로 유탄을 맞은 과목 중 하나가 한국사 분야이고 적지 않은 젊은 층들은 역사에 대한 교육 자체를 받아 보지 않아 역사에 대한 확고한 분별력을 가지지 않은 세대도 많이 존재한다.

 한국의 조선시대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왕은 거의 예외 없이 세종(1418~1450 재위)을 꼽고 있는데 ‘광해, 왕이 된 남자’가 공전의 대히트를 친 2012년, 초등학생 조사에 의하면 조선시대 가장 위대한 왕으로 광해군(1608~1623 재위)을 친다는 조사를 보고 아연 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광해군은 지금 탄핵에 해당되는 인조반정(1623)으로 강제 폐위되고 조선시대 왕조차 볼 수 없어 사관(史官)의 기록에 대한 중립성이 철저히 보장된다는 왕조실록에 혼미한 왕이라는 의미의 혼군(昏君)으로 기록돼 있다. 아버지 선조의 전폭적 지원을 받지 못해 항시 서자 콤플렉스를 가진 광해군은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역모로 몰아 강화로 귀양 보내 방에서 못나오게 못질하고 불을 때서 동생을 질식사하게 하고, 어머니 격인 인목대비를 폐위하는 등 소위 폐모살제(廢母殺弟) 혐의로 쿠데타에 의해 폐위됐다.

 지금도 전주지역에 가면 맛볼 수 있는 모주(母酒)는 폐위 당시 인목대비가 야인으로 유배 시 마신 약한 술로 추후에도 즐겨 마셨다고 전해진다. 광해군이 폭정만을 일삼은 것은 아니고 명청교체기 명과 청의 균형 외교는 패권교체기의 약소국 외교에 귀감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양반 적폐의 상징인 군역(軍役)과 조세제도를 대동법(大同法) 형태로 세제개혁을 단행한 점도 조선시대 돋보이는 민생 정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병헌의 완숙한 연기력과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광해군의 공과가 객관적으로 조명되지 않고 기득권층 저항으로 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비운의 왕으로 영화에서 묘사된다. 영화 속 광해군의 실정에 대한 부분은 무시한 채 개혁 의지와 통치철학이 적폐세력의 반발로 이뤄지지 않은 부분만을 미화한 대표적 역사왜곡 사례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왜곡 사례는 ‘조선시대 멸망의 주역인가? 최대 피해자인가?’에 대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고종비 민 씨(1851~1895)가 드라마와 오페라로 공연되면서 구국의 화신으로 미화된 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러나 지금도 독립운동의 상징적 구심점인 재야 유생인 황현 선생(1955~1910)이 한일병합 시 국가의 맥이 끊어짐을 한탄하며 자결하면서 공개된 유작 역사서인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는 민 씨와 민 씨 일족의 매관매직, 족벌통치, 국가재정을 망각하고 무리한 궁궐 신축과 호사스러운 궁중파티 등으로 물가가 폭등하는 민생 파탄으로 이어졌고, 적지 않은 조선 백성들이 민 씨를 시해하는 일제의 을미사변(1895)을 도와준 점도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종묘산업의 선구자인 우장춘 박사의 아버지인 우범선은 당시 경복궁 수비대장으로 일본군의 민 씨 시해 당시 일본군을 안내한 인물로 이후 일본으로 도피한 후 고종이 보낸 자객에게 암살된 인물이다. 우장춘 박사는 이 같은 아버지의 죄과를 참회하고자 일본의 방해 공작과 유혹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생활이 보장된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해 한국의 식량난을 해결한 분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드라마와 오페라에 비친 민 씨의 행적은 구국의 일념으로 반일 활동을 했으나 친일파와 일제에 의해 희생한 의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 영화 ‘출국’과 ‘국가부도의 날’ 따라잡기

 최근 한국의 정치판에서 좌우를 상징하는 두 편의 팩션 영화가 상영됐다. 둘 다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인 이범수(출국 주연)와 김혜수, 유아인(국가부도의 날 주연)의 연기력으로 모든 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다.

 보수우파가 적극 추천하는 영화 ‘출국’은 독일에서 자진 월북해 북한에서 가족을 북한에 두고 북한을 탈출하는 독일 경제학자 오길남 박사의 자전적 이야기로 북한의 인권 실태는 등한시하고 무리한 남북 화해를 추진하는 정책 비판 차원에서 북한 실상을 고발하는 권장 영화가 됐으나, 오길남 박사 역시 북한 스파이로 많은 재외 학자를 입북시키고 혼자만 탈북하는 공작원으로서의 만행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7년 IMF 구제금융 당시 긴박한 경제 상황을 그린 작품으로 역사왜곡 논란이 한창이다. 논란의 중심은 기득권층의 탐욕이 불행한 역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과연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많이 든다. 친일파가 나라를 망쳤다는 가정이라면 만일 1910년 당시 우리나라 내각이 안중근 의사와 같은 애국지사가 계셨다면 한일병합이 없었을까? 하는 문제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1997년 IMF 당시 김혜수 같은 우국 충정과 판단력을 갖춘 엘리트의 역할이 기득권층 탐욕에 의해 국가 불행의 결과를 가져 온 것인가의 문제이다. 1997년 당시 한국은 국제 금융시장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는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라는 성과에 도취해 닥치는 경제위기의 실체를 이해 못하는 총체적 무능 상태로 기업의 경쟁력 회복을 위한 구조조정 노력을 등한시한 결과가 금융위기를 재촉한 점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역사 영화가 개봉될 때마다 역사 왜곡 이슈가 제기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역사관이 아직 통합되지 못한 것을 반증한다. 이 같은 분열된 역사관을 통합하는 노력이 선행되면 해묵은 역사왜곡 논쟁은 자연히 사라지리라 확신한다. 아울러 역사를 영화화 할 때 문제의 핵심을 흥미위주로 지나치게 왜곡하는 부분은 미디어가 갖는 확산성으로 볼 때 폐해가 생각보다 클 수 있다. 2019 새해에는 품격 있고 사회적 문제 의식을 가진 역사영화가 보다 많이 만들어 지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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