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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기 (사)인천언론인클럽 명예회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되면서 사법부의 수장이 구치소에 수감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사법부 치욕의 날이다. 개인 비리가 아닌 재판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구속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국민이 느끼는 참담함은 더 크다. 아직 유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사법 신뢰는 더욱 추락하게 됐다. 국가의 삼권분립 세 축 중 하나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7개월 넘게 전·현직 법관 100여 명을 조사한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40여 가지가 넘는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등 재판거래, 통합진보당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불법 수집, 법관 사찰 및 사법부 블랙리스트 작성 등이다.

 동아일보는 "전 대법원장을 구속할 정도로 증거와 법리가 충분한지 여전히 의문이다. 물증으로 제시된 문건들도 재판거래 혹은 재판 개입을 유죄로 입증할 만한 확고한 증거로 보기 힘들다." 세계일보는 "전직 대법원장을 구속까지 할 사항인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재판부는 정치적 고려 없이 오직 법과 증거에 입각해 실체적 진실을 가려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부적절한 행위와 범죄는 다른 문제다. 피의자에 대한 마구잡이 직권남용 적용은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라고 논평했다.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인 김평우 변호사의 논평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매스컴에 의하면 그의 구속 사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재임 시 좌파 법관들의 보직인사에 불이익을 주고, 이석기 사건, 일제징용사건 등에서 판결에 개입하는 등 대법원장의 직권을 남용한 혐의와 증거 인멸의 우려다. 직권남용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이 있고, 증거인멸의 객관적 증거는 없지만, 증거인멸할 가능성이 있어 구속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가능성이 있어 구속한다는 것인데, 세상에 가능성 없는 일이 어디 있으며 가능성이라면 몇 %인지 무슨 객관적 기준이 있단 말인가? 결국 법관의 자유재량으로 구속하고 싶어 구속한다는 것이니 참으로 엿장수 마음대로 재판이다.

 전직 대법원장의 구속은 선진 국가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엄청나게 쇼킹한 뉴스다. 왜냐하면 대법원장은 사법(司法). 즉, 그 나라의 양심과 도덕, 법질서를 상징하는 인물인데 이런 사람이 파렴치한 폭력배들처럼 구속된다는 것은 그 나라의 양심, 도덕, 법질서가 완전히 땅에 떨어졌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내 개인으로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쇼킹한 뉴스다. 왜냐하면 한국 법조계처럼 동료의식과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이 없다고 알고 있던 나로서는 현직 부장법관이 바로 2년 전 사법부수장(首長)이었던 양승태 대법원장을 구속한 뉴스가 마치 해방 후 공산혁명이 일어난 북한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고발하는 것을 보는 듯한 섬찟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70년간 정치계에서는 온갖 하극상과 배신이 다반사로 있었지만 적어도 법조계에서는 죄 없는 동료나 선배 죽이기는 없었는데 드디어 법조계의 위계질서가 모두 무너진 것 같다.

 그런데, 한국 매스컴의 반응은 아주 차분하다. 오히려 ‘죄가 있으면 대통령도 구속시켰는데 전직 대법원장쯤이야 당연히 처벌 받아야지. 그것이 법 앞의 평등이지’라고 한국의 법치주의가 신장됐다고 자랑스러워 한다. 심지어는 좌파법관, 호남출신 법관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고 좌파인사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한 악질 법관들을 차제에 모두 정리해야 된다고 서슬이 시퍼렇다. 매스컴의 이런 보도를 보면, 2년 전에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란 가짜 뉴스 연속 드라마를 만들어 박근혜 대통령과 50여 명의 고위직 관료들을 잡아 넣었듯이 이번에는 ‘양승태 사법농단’ 이란 ‘국정농단시리즈 2편’을 만들어, 수십 명의 전직 고위 법관들과 로펌의 변호사들을 구속시키려고 벼르는 것이 눈에 보인다. 지난 2년간 한국의 법조인들은 탄핵정변에서 박근혜 대통령 등 수 많은 선량한 시민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구속되는 것을 남의 일로 보며 자신들의 특권을 즐겨 왔다. ‘남의 자유와 재산을 존중하지 않으면 자기의 자유와 재산을 잃는 법이다!’" (2019.1.23 김평우 변호사 논단 전문)』

 이번 일로 검찰과 정치권이 사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전례가 만들어진 것은 심각한 문제다. 사건의 도화선인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세 차례에 걸친 대법원 자체 조사에서 사실 무근으로 결론이 났었다. 그런데도 김명수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히면서 사법부가 정치에 오염됐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으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지게 됐다. 사법부가 불신을 받으면 법치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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