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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 농협대학교 교수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그겁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등의 소설을 쓴 작가 한강(2016년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수상)은 그렇게 말했다.

 국어사전에서는 ‘양심(良心)’을 ‘어떤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라고 정의한다. 양심은 어질 양(良)과 마음 심(心)의 조합으로 이뤄진 단어이기에 일반적으로 ‘어진 마음씨’ 내지 ‘선량한 심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것을 두고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사람은 ‘비양심적인 사람’, ‘양심이 없는 사람’, 즉 ‘나쁜 사람’이란 말이냐"며 반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은 ‘양심’의 법적 의미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법률 용어로서의 ‘양심’은 ‘소신·신념·사상 등’의 의미를 복합적으로 포괄한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dignified being)’이므로 각자의 가치 기준(소신·신념·사상 등)에 따라 살 자유를 가지며, 다른 가치 기준에 따라 살도록 강요당하지 않는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즉 인간은 갈대처럼 자연에 있어서는 약한 존재이지만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존재라고 말했는데, ‘양심의 자유’는 곧 ‘인간이 자신의 생각(소신·신념·사상 등)을 갖고 그에 따라 살 자유’이며, 이는 행복추구권의 기초인 ‘자기결정권’과 연관된다.

 지난달 4일 국방부는 "향후 ‘양심적 병역거부’ 대신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는 "국방부의 입장이 대체복무제에 관한 국제 인권기준과 헌법재판소 결정 및 대법원 판결 취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병역거부 행위가 개인이 가진 양심의 보호와 실현이 아닌 종교적 신념과 가치에 따른 행위로 비쳐질 소지가 있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어느 쪽 입장이 옳은지를 두고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국방부는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에 대한 일부 비판여론을 의식해 그 방침을 정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부적절하다고 본다. 두 가지 측면만 간략히 지적해 본다.

 첫째, 법적으로 정립된 용어를 무시한 것이다. 대체복무제 도입 논의의 계기는 법적 측면(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대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법적 판단)에서 비롯됐다. 그러므로, 관련 용어는 법적 의미에 충실한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양심’의 법적 의미를 도외시하고 함부로 다른 용어로 바꿔 사용하면 국민들에게 인식의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용어의 혼동이 사회적 혼란으로 귀결될 수 있다.

 둘째, 국제적으로 보편화된 용어를 무시한 것이다(글로벌 스탠더드에 위배된다). 유엔 인권위원회와 자유권규약위원회 등 국제사회는 1980년대 후반부터 병역 거부를 사상·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근거한 모든 인간의 권리로 인정하며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이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거부하고 한국만 사용하는 용어를 따로 창출하는 것은 대외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양심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인권탄압국가’라는 오명을 떨치기 어렵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국방부가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를 쓰지 않기로 한 것은 재고돼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국방부가 여러 의견을 모아서 방침 변경을 결정한 것이라며 그 결정이 존중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 나서기보다는 국무총리실이 주도해 법제처 등 관련 부처의 의견을 들어 신중하게 입장 정리를 해야 할 것이며, 국회에서도 심도 깊게 논의해야 한다. 정부는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하며, 국민의 오해 소지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야 한다.

 ‘용어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한가’라는 식의 편법적, 자의적, 인기영합적인 태도를 취하면 종국에는 법치주의를 위험에 빠뜨리게 할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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