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할매
86분 / 다큐멘터리 /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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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인 할매’는 한마디로 ‘시(詩)확행 무공해 힐링 무비’다. 인생의 사계절을 지나며 삶의 모진 풍파를 견뎌낸 시인 할매들이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운율을 완성시켜 나가는 과정을 담았다.

 세월의 풍파에 밀려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한 채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야 했던 평균연령 80세 할머니들은 어느 날 서봉마을에 열린 길작은도서관을 통해 한글에 눈을 뜨게 된다. 마을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은 도서관에 모인 할머니들은 책 정리를 돕기 시작했고, 책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본 김선자 관장은 곧바로 한글교실을 열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팔순을 넘겨서 한글과 만나게 된 할머니들은 이 늦은 만남에 대해 ‘제2의 삶을 살아가는 것 같다’고 표현한다. 시간이 거듭날수록 삐뚤배뚤한 글씨로 적어낸 시와 그림들은 이면지와 달력 뒷면을 가득 채웠고, 그 속에 고스란히 담긴 삶의 이야기들은 그렇게 한 편의 시가 됐다.

 할머니들의 시는 2013년 성인문해교육시화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2015년 곡성군민을 대상으로 한 곡성문학상에서도 상을 받으며 세상에 알려졌다. 늦게 배운 시를 통해 문학상까지 받은 할머니들은 2016년 첫 시집 「시집살이 詩집살이」를 발간했다.

 기교 없이 순수해서 더 아름다운 할머니들의 시는 문인들의 호평까지 받았다. 시집에 수록된 124편의 시에는 삶의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동안 겪어야만 했던 시집살이와 여전히 손에서 놓지 못한 농사일, 자식·손주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때로는 담담하고 애절하게 자신의 생을 이야기하는 할머니들의 순수한 목소리는 위로의 노래가 돼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영화는 시집 속에 담긴 할머니들의 일생과 회환을 표현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보내는 헌사와도 같은 이번 작품은 시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따스한 시골 풍경과 할머니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확인할 수 있어 감동을 배가시킨다.

 큰아들을 사고로 잃고 여전히 슬픔을 간직하고 살아온 어머니의 얼굴을 보듬는 딸의 모습부터 먼저 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우리가 잊고 있던 할머니의 모습들까지 영화 속 어머니를 향한 자식들의 뭉클한 시선과 할머니들의 지나간 세월을 향한 그리움은 서로 맞물리며 보는 즉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

 특히 슬픔과 고난에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고 내려놓으며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이 선사하는 순수한 문장들은 어머니 세대의 무한한 헌신과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모진 삶을 살아온 할머니들의 모습이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이 영화는 지난 5일 개봉했다.

  조현경 기자 cho@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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