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 역세권은 터에 대한 원주민들의 애착과 변화에 대한 바람이 큰 곳입니다. 재생의 토양이 충분한 만큼 앞으로 무엇을 구축하고 어떤 것을 채울지 주민들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2019021101010001207.jpg
 20여 년 전 제물포에 터를 잡은 류성환(46)씨는 도시재생활동가로서 주민들과 호흡하고 있다.

 인하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한 그는 상수도사업본부가 지금 자리에 들어오기 전 그 터에 작업실을 얻어 제물포살이를 시작했다. 류 씨의 작업실은 인천대학교가 송도국제도시로 가면서 한 차례 헐렸고, 서화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또다시 무너졌다. 시립대학교와 함께 했던 제물포의 옛 전성기와 도화지구 조성으로 탄생한 새로운 도시의 변화를 생생하게 겪었다.

 현재 활동의 거점으로 삼은 ‘제물포 갤러리’도 지역에 대한 고민 속에 탄생했다. 인천대가 떠나고 일어난 공동화 현상은 제물포 일대의 문화까지 ‘공동화’ 상태로 만들었다. 노인세대가 많은 마을에서 쉽게 문화를 접할 통로를 고민한 끝에 갤러리를 만들기로 했다. 인천의 대표적 원도심인 미추홀구에는 마땅한 전시공간이 없는데다, 특히 제물포는 문화를 접할 만한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2011년 재개발이 한창이었던 옛 인천대 숙골에서 한 차례 문화도시공동체를 만들어 볼 참이었다. ‘숙골로 스쾃 커뮤니티’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그는 지역 예술가들과 20개의 빈집을 전시공간으로 만들었다. 강요된 이주를 경험한 사람과 오래된 구도시의 흔적들과 기억을 되새기는 작업으로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지하 유휴공간을 갤러리로 활용해 원도심 문화를 꽃피워 보자는 이번 구상은 주민들의 참여로 완성됐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고, 동네 부동산은 취지에 공감하며 중개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지역 작가들도 공간을 꾸미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주민들과 함께 만든 갤러리는 주민과 지역 작가들을 위해 열려 있다. 지역 대학을 나온 신진 작가들의 그룹 전시나 개인 전시를 열어 주민들이 감상하도록 한다. 작품 감상과 전시공간 운영에 대한 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전시가 없는 요즘에는 주민들이 미술을 놀이처럼 접할 수 있도록 드로잉 아카데미를 여는 등 학습공간으로 활용한다. 지속적으로 지역 작가나 주민들과 머리를 맞대고 버스킹 공연과 전시 아이디어를 짜낸다.

 무언가 일어나지 않을 듯한 공간에서 피어나는 문화가 쌓이고 쌓여 변화가 일어난다. 더딘 과정을 통해 주민과 서서히 가까워진 지금은 상인들이 먼저 공간을 내어줄 정도로 신뢰가 쌓였다. 사람들이 떠난 후 먼지가 쌓이고 곰팡이가 슬었던 지하에 발길이 이어지면서 활기가 도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덕분이다.

2019021101010001210.jpg
 한 곳이었던 갤러리는 곧 제2의 공간으로 탄생할 예정이다. 이 같은 전시공간을 5개 이상 연결시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다.

 류 씨는 "거대한 랜드마크를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지하공간들이 얼마든지 원도심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며 "억지로 주민들을 설득하기보다는 서로 상생한다는 마음으로 함께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자신했다.

 재생의 관점으로 본 제물포는 특별하다. 원도심 재개발이 시작되면 자본이 들어오고 주민들이 쫓겨나는 ‘둥지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제물포는 사례가 적은 편이다. 상인들 중에 원주민의 비중이 높아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기 때문이다. 원도심에 살지 않으면서 임대료만 챙기려는 건물주들이 적어 상점들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다.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쌓아 온 옛 정서에 아파트가 들어서며 변화한 모습들은 오히려 재생의 강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학생과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던 과거 제물포에 이제는 상수도사업본부나 제물포스마트타운의 공무원, 옛것을 쫓아 온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그는 "대학이 이전하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도시의 모습이 바뀌었지만 제물포는 여전히 하늘이 잘 보이는 생태적 지형을 갖고 있다"며 "제물포야말로 새로움이 원도심 안에 싹트는 공존의 도시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애착을 드러냈다.

 류 씨는 제물포 역세권이 ‘느리지만 건강한 도시’가 되기를 바랐다. 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신중하게 논의하고, 설득이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바로 정책을 바꾸는 것보다 적어도 10년 이상을 두고 보며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도시의 변화는 그 속에 살고 있는 생명, 사람이 있기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류 씨는 "재생사업에서는 느리지만 지향점을 갖고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며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목표의식보다는 여기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제물포 역세권이 행복한 거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말했다.

글·사진=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