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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태조 4년 10월 11일 ; 임금의 탄일(誕日)이라 군신들이 헌수를 하니, 군신들에게 잔치를 베풀었다.(上誕日, 群臣上壽, 賜群臣宴)"

 "태조 4년 10월 14일 ; 좌정승 조준, 우정승 김사형, 판문하부사 권중화,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대나무[竹]로 만든 요여(腰輿 ; 작은 가마) 하나씩을 내려 주고, 기로제신(耆老諸臣)에게도 내려 주었는데, 대체로 홍영통(洪永通)이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賜左政丞 趙浚 右政丞 金士衡 判門下府事 權仲和 判三司事 鄭道傳 竹腰輿各一, 以及耆老諸臣 蓋以洪永通墜馬爲戒也)"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나오는 기록이다. 임금은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다. 홍영통이 임금의 탄일(誕日) 잔치에 참석해 술에 만취돼 집으로 돌아가다가 말에서 떨어져 사망한 것이다.

 홍영통은 고려 공민왕 때 문음(門蔭)으로 진출했다. 조선왕조의 개창에 참여해 태조 때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경성수축도감판사(京城修築都監判事)를 역임하고 남양백(南陽伯)이 된 조선조 신하다.

 이성계는 본인의 생일 잔치에 참석했던 신하가 술을 마셔 취한 상태로 말을 타고 귀가 도중 떨어져 죽었으니 그 마음 편치 않았을 것이다.

 때문에 홍영통이 죽은 후 사흘 후에 대신들에게 가마를 내려 음주승마(飮酒乘馬)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조선 중기의 명의(名醫) 허준(許浚)은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 음주 후 금기를 나열한 ‘음주금기(飮酒禁忌)’ 항목에서 ‘술 취하거나 배부를 때 수레와 말을 타고 달리거나 뛰면 안 된다(醉飽不可走車馬及跳越)’라고 해 음주 상태로 수레나 말을 타는 것을 금하라 했다.

 오늘날 음주운전에 해당하는 음주승마를 조선시대에도 삼가토록 했다는 거증(擧證)이다.

 허준은 또 "술은 석 잔을 넘겨 마시지 말라, 많이 마시게 되면 오장(五臟)을 상(傷)하게 하고 마음을 어지럽혀 발광(發狂)하게 된다(酒不過三盃多卽 傷五臟亂性發狂)"며 지나친 음주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해 건강을 해친다고 가르쳤다.

 그는 또 주독(酒毒)이 변해서 모든 병이 된다 하고, 술로 인해 병이 깊어지면 "소갈(消渴)과 황달(黃疸)·폐위(肺위)·내치(內痔)·실명(失明)·효천(哮喘)·노수(勞嗽)·전간(癲癎) 등의 형상할 수 없는 증세가 일어나니 구안(具眼)의 의(醫)가 아니면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음주의 폐해를 누차 경고했다.

 설 명절 연휴에서 정월 대보름으로 이어지는 기해(己亥)년 연초다. 연말연시를 전후해 술 소비량도 늘었다. 과음으로 인한 음주 사고도 빈발하고 있다.

 누구보다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할 검사와 경찰관 중 일부가 음주운전으로 적발돼 물의를 빚기도 한다는 소식도 끊이지 않고 들려 오고 있다. 심지어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는 법, 일명 ‘윤창호 법’을 발의하기도 했던 한 국회의원이 음주운전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사기도 했다. 지난 10일에는 한 유명 탤런트가 전날 밤 마신 술이 덜 깬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적발돼 면허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출연 취소 등 공연 스케줄에 차질을 초래해 대중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이처럼 음주로 인한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 우리 사회다.

 석 잔의 술까지는 허락한 허준도 술을 마신 후에는 말을 달리지 말라 했다. 음주운전 처벌 기준이 강화됐다. 단 한잔의 술이라도 마신 후에는 자동차 운전대를 절대로 잡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수많은 시민들이 귀중한 생명을 잃고 있다. 운전자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가정에 불행을 초래한다. 나아가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지나친 음주를 경계해 술을 어느 정도 이상으로 따르면 아래에 난 구멍으로 술이 새도록 만들어진 술잔 계영배(戒盈杯)의 교훈,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새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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