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jpg
▲ 문계봉 시인
세상의 색깔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낍니다. 새로운 계절,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변하는 계절에 대해 내 몸도 이전과는 다르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새벽녘에 이불을 끌어당겨 덮으면서도 낮이면 자주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창밖의 풍경들을 말 없이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확실히, 그리고 언제나 계절은 저 혼자만 스리슬쩍 옷을 갈아입는 게 아니고 하늘과 땅, 나무와 바람,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변하게 하는군요.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러한 변화는 또 얼마나 정교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되는 것인지 경외감마저 듭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 연결돼 있는 게 틀림없나 봅니다. 그건 굳이 불가(佛家)의 연기설(緣起說)을 떠올릴 것도 없이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시간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모습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겁니다.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고, 교호하고, 반응하며 만들어내는 길항(拮抗), 상보(相補)의 다채로운 관계들, 그 관계의 어디쯤엔가 당신과 나도 있을 겁니다.

 그래요. 확실히 저 들판의 이름 모를 들꽃에서부터 말 없이 수천 년을 견뎌온 바위와 나무와 그들에게 자양분을 주는 대지와, 대지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은 서로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이런 예사롭지 않은 상호 간의 관계와 인연을 안다면, 세상을 보는 우리들의 눈도 달라질 거예요. 그렇지 않은가요? 물론 관계가 긴밀하다는 것과 관계가 아름답다는 것은 분명 다른 범주의 문제입니다.

 악연도 인연이고, 불편한 관계도 관계는 관계잖아요? 이 계절, 나는 당신(들)과 나의 세상, 그리고 내 주변의 익숙한 사물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본래 우리 것이었으나 어느 때부턴가 잃어버린 것들의 회복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하겠지요. 솔직함은 비단 인간관계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사물을 대하는 태도와 당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솔직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겠지요. 물론 솔직하다는 것은 "나 솔직하거든요"라는 선언으로 보증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주체의 구체적인 삶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여러 근거들에 의해 비로소 확보되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과연 말과 글은 상대의 솔직함(진의, 혹은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력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것에 대해 무척이나 회의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관계에 있어 말과 글만큼 위험하고 위장가능한 표현수단도 없다는 말이지요. 현실 사회에서도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오해와 불신이 대체로 말과 글로부터 비롯되지 않던가요? 그렇다면 말과 글 이외에 자신의 진정성을 드러낼 수 있는 또 다른 매개는 무엇일까요? 불행하게도 온라인에서는 그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모순된 관계망들인지요. 한계가 명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습관처럼 매달리게 되는 게 바로 SNS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은 온갖 모순들로 가득합니다. 그 모순 투성이의 삶을 견디어 내기 위해 사람들은 스스로 편견과(가끔 이게 뚜렷한 주관이라고 오해되기도 하지만) 아집이란 보호막을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저마다의 색안경을 끼고서 대상을 바라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간들의 당연한 상정(常情)일 겁니다.

 그 모든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이 때로는 아름답게 또 때로는 그악스럽게 얽히고설키고, 섞이고 부딪치는 곳이 바로 온라인 공간이겠지요. 그리고 그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다 보니 당신과 나는 이렇듯 자꾸 어긋나고 서로 비틀거리게 되는 게 아닐까요? 하지만 난 오늘도 당신은 물론 세상과의 소통을 희망하며 저 익명의 혼돈 속으로 문자들을 전송합니다. 지금 당신은 어디쯤에 계신가요? 내 목소리, 내 글이 들리고 보이시나요?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