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jpg
▲ 이재훈 겨레문화연구소 이사장
독일의 대표 신문이라 할 수 있는 ‘쥐트도이체 짜이퉁(SueddeutscheZeitung)‘의 기자이자 인기 칼럼니스트인 위르겐 슈미더가 쓴 책 「왜 우리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할까」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의 서문에서 접한 사실이지만 사람들은 평균 수면 시간 여덟 시간을 제외하면 매 시간마다 평균 12.5회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4.8분에 한 번꼴인 셈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그 역시 "기자라는 직업은 묘하다. 사회의 거짓을 파헤치고 진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만,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기사를 위해 이런저런 사실들에 화려한 포장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을 전한다는 핑계로 자주 거짓말을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토로한다.

 그는 ‘거짓말하지 않고 40일간 살아보기’를 계획하고 스스로 실천했다. 그 과정을 엮어 책으로 출판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40일을 거짓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나는 다시 거짓말을 한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공손하게 진실을 말하려 노력할 것이고, 꼭 거짓말이 필요하다면 상대에 대한 배려를 철칙으로 삼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아울러 거짓이 사회의 윤활유가 될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좋은 윤활유도 엔진이라고 할 수 있는 정직과 솔직함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실제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뻔히 거짓인 줄 알면서도 큰 문제가 없다면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굳이 진실을 말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에는 적당한 거짓말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거짓말을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하얀 거짓말은 어쩌면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이 문제가 되는 것은 선의의 거짓말이 아니라 남을 해할 수도 있는 악의적인 거짓말이다. 그런 새빨간 거짓말은 적반하장이란 말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적반하장(賊反荷杖)은 조선 중기의 학자 홍만종(洪萬宗:1642~1725)이 저술한 문학평론집 순오지(旬五志)에서 그 어원을 찾아볼 수 있다.

 도둑질한 사람이 도리어 몽둥이를 들고 주인에게 달려든다는 말이니 죄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잘못을 빌거나 사과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성을 내며 잘못이 없는 쪽을 나무라는 어처구니없는 경우에 흔히 쓸 수 있는 말이다.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분수(有分數)’, ‘적반하장(賊反荷杖)도 유만부동(類萬不同)’의 형태로 쓰이곤 하는데, 최근에는 이 말과 너무 잘 어울리는 사건 때문에 온 국민의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난해 12월 20일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가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우리 해군 함정을 대상으로 저공 위협 비행을 한 사건이다. 관련 부처에서는 열심히 논평을 내고 나름 노력하는 모습이지만, 평소 상대진영의 일이라면 침소봉대(針小棒大), 내로남불에 익숙한 우리 의원들은 웬일인지 일본 정치인들과는 달리 아주 조용하기만 하다. 오히려 어떤 이는 한일관계를 악화시켜서는 곤란하다며 해당 부처에 조용한 대응을 주문하기까지 한다.

 우리 정부의 사과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을 하며 적반하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측의 거듭된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후에도 세 번이나 더 같은 방식의 비행을 감행하면서 엉뚱한 거짓 논리를 이어가고 있다. 더구나 지난해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에도 적반하장 논리를 폈고, 이번에는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일본 여당의원이 우리나라를 향해 "도둑이 거짓말을 한다"는 등 망언을 쏟아내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영결식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것과 관련해서도 한마디 애도 표명 없이 대사관 안전 문제만을 거론하면서 여전히 적반하장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한일관계 악화가 동북아시아 안보 환경 변화와 같은 구조적 요인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대정신을 거스르며 거짓 주장과 적반하장을 일삼는 일본 위정자들이 국내에서는 오히려 지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외부 요인이라기보다는 확실히 국내 여론을 의식한 정치적 속셈이 더 커 보인다.

 가깝지만 멀기만 한 이웃나라 일본의 적반하장 행동에 대해 우리들은 그저 ‘먼 산 바라보듯’ 해도 좋을까? 이전투구(泥田鬪狗)식 정쟁에 빠져 정작 국격 훼손에도 머리를 마주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을 보며 떠올려 본 생각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