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주도형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300-14번지 골목 전경.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 주민주도형 도시재생사업지로 선정된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300-14 골목 전경. 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인천시 남동구 구월동 300-14 ‘아랫말 300’에 마을재생사업이 예고되면서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시가 주민들의 정주 요구를 받아들여서다.

아랫말 300은 남동소방서와 주유소 사이 시원하게 뻗은 인주대로 8차로 도로 옆, 고도성장과 개발에서 한참 비켜난 듯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방문한 마을 골목 구석구석에는 좁은 집에 둘 곳이 없어 밖으로 밀려 나온 살림살이가 가득했다. 청소도구와 의자 등 쌓인 살림에 들이치는 빗물을 막는 간이 지붕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발치에는 햇살을 머금은 구월아시아드선수촌 아파트가 우뚝하다. 하지만 이곳은 아직 아침이 오지 않은 것처럼 캄캄하고 적막하다.

이 마을은 전체 주민(24가구, 40여 명) 절반이 60대 이상 노인들이다. 소방서 터를 침범한다며 핍박받던 시절, 주민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허가 건물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도시개발사업이 제시됐기 터였다. 아랫말 300은 1969년 중구 북성동 월미도로 들어가는 다리 인근 판자촌 철거민들이 이주해 만든 마을이다. 이미 한 번 자신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닥쳐 온 이주의 가능성은 크나큰 생채기였다.

"크게 바라는 게 없어요. 그냥 천장이나 좀 튼튼해졌으면 좋겠는데. 비가 자꾸 새서 벽에 얼룩이 생기는데 내가 천장을 아무리 고쳐도 소용이 없어요." 아랫말에 벌써 50년 가까이 살아온 A(75)씨의 작은 바람이다.

A씨에게 이 집을 떠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손수 수십 번 덧대어 고치고 누가 말 안 해도 골목 쓰레기를 줍는 등 정성껏 가꾼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 아랫말 300은 계량기 한 대로 수도와 전기를 여러 집이 쪼개 쓰고, 식탁의자로 간이 변기를 만든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는 등 생활 여건이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주민 대부분이 고물 혹은 폐지를 주어 팔거나 기초생활수급지원비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재생사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난해 9월 인천도시공사가 추진하는 ‘주민활동 돋음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주민협의회를 만들고 마을 대청소를 하는 등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들은 앞으로 시와 연계한 마을재생 참여 기회를 얻길 기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마을 위생을 위한 공동화장실 개설, 공동텃밭, 빈집 치안 단속 등 마을재생과 자립 기반을 위한 다양한 의견을 제안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우희수(48)주민협의회 공동대표는 "이 마을은 도시가스도 쓰지 못해 기름보일러와 전기장판으로 겨울을 보내야 하니 전기요금 부담이 크다"며 "근처에 노인정 등이 없어 빈집을 이용해 냉난방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는 노인쉼터를 만들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현재 한국자산관리공사, 남동소방서, 도시공사 등에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다"며 "3월 이후 마을재생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예정"이라고 했다.

김유리 인턴 기자 kyr@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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