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신 김복동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 1992년 자신의 피해를 처음 공개한 이후 같은 해 아시아연대회의에서, 1993년 오스트리아 세계인권대회에서,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진실을 증언했다.

 "내가 그 피해자다. 그들은 나를 강제로 끌고 갔으며, 그곳에서 나는 사람 이하의 취급을 당하며 성노예로 사용됐다."

 김복동 할머니가 자신의 피해사실을 고백하기까지는 5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1940년 그가 일본군에 의해 연행됐을 때부터 1992년 처음 폭로하기까지의 시간이다. 그동안 김복동 할머니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했을 테다.

 ‘말하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적지 않은 순간에 ‘말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한다. 불의를 봤을 때, 누군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정당한 권리를 요구할 때 등 다양한 삶의 상황들이 우리에게 ‘용기’ 낼 것을 선택하게 한다.

 하지만 매 순간마다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특히 그 용기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 우려되면 더더욱 그렇다.

 특히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부당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더욱 큰 용기가 필요하다. 승진이나 업무에서 피해를 입지 않을까, 다른 직원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과 뒷말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용기 내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다른 이들이 강요하거나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그 사람들이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고 이후 벌어질 불합리함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말하는’ 용기다. 용기를 내지 않으면 비슷한 불합리함은 언제고 다시 발생한다. 이재현 서구청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다. 피해자가 없으면 범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들을 응원한다. <이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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