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불시에 닥치기도 하고, 천천히 병으로 옭아매기도 한다. 그래서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하고 피하고 싶은 것이 보편적 인식이다. 하지만 의학 발전으로 기대수명이 크게 늘어나며 행복한 방식으로 마지막을 준비하는 ‘웰 다잉(Well Dying)’ 문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죽음을 무조건 금기시하고 회피하는 게 아니라 미리 준비된 상황에서 평안하게 맞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의료시스템이 바로 ‘호스피스’ 제도다.

본보는 경기북부지역의 대표적 종합병원인 의정부성모병원 호스피스센터를 찾아 존엄한 죽음을 위해 환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와 의료진의 노력을 살펴봤다.


# 호스피스 병동, 존엄과 사랑 속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곳’

의정부성모병원은 1984년 호스피스 전체모임을 시작해 각 병동에서 호스피스 병실을 운영해 왔다. 2017년 5월 말기암 환자 호스피스전문기관 지정사업을 시작, 지난해 5월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개소 후 같은 해 6월 29일 보건복지부로부터 호스피스전문기관으로 지정받았다.

환자나 그 가족들에게 호스피스는 결국 들어가면 ‘죽어서 나오는 곳’이라는 인식이 크다. 하지만 이곳 의료진과 봉사자들은 호스피스를 ‘죽음을 받아들이는 곳’이라고 말한다.

의정부성모병원의 호스피스센터는 신관 5층에 13개 병상(1인실 1곳·4인실 3곳)과 임종실, 가족실, 목욕실, 상담실, 요법실, 기도실 등을 갖췄다. 또 전담 의사와 간호사 9명, 전담 사회복지사, 담당 원목자, 호스피스팀장을 비롯해 요일별 자원봉사자 40여 명이 말기 환자와 가족들을 돌보고 있다. 가톨릭 정신에 입각한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영성’ 중심의 시스템으로, 환자의 영혼과 육신을 함께 치료하는 데 가치를 두고 있다. 고통받는 환자들이 편안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고 가족들과의 화해를 통해 죽음을 절망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사랑 속에서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


# 환자와 가족 간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통해 평안한 죽음으로 인도

호스피스는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치료를 했음에도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호스피스 이용 권고는 처음 시한부 진단을 받았을 때에 이어 두 번째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한다.

의정부성모병원 호스피스센터는 기대 여명이 3개월 안팎인 환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들 역시 병마와의 싸움에서 지치고 지쳐 정말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을 때 입원을 결심하기에 환자들의 평균수명은 약 3주에 불과하다.

호스피스센터 완화의료팀장을 맡고 있는 이성희 수녀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 임종하는 분들을 보면 3주라는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짧다고 느껴진다"며 "차분한 환경에서 많은 이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증세가 호전돼 1∼2개월가량 여명이 늘고 편안하게 돌아가시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들을 ‘곧 죽을 사람’이 아닌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살아있는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를 미리 죽은 사람 취급할 게 아니라 끝까지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호스피스에서는 환자 본인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를 일깨워 주는 과정을 통해 가족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화해와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가족의 임종 지켜본 유가족 대상으로 심리안정 프로그램 운영

호스피스 환자들은 평소 심리적 안정을 위해 음악과 미술 등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요법실’과 ‘기도실’ 등에서 의료진과 봉사자들의 케어를 받는다. 하지만 결국 기력이 소진돼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서 ‘임종기’를 맞이한다. 의학적으로 임종 72시간 전부터 여러 징후가 나타난다. 이때부터 호스피스 직원들은 가족들과 장례 절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죽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액팅 다이닝(Acting Dying)’이라고 부르며, 이때 환자들은 ‘임종실’로 옮겨져 가족들과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의정부성모병원 호스피스센터는 환자가 떠난 뒤에도 유가족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후속 서비스를 제공한다. 삼우제를 함께 지내기도 하고, 1년 동안 사별 가족들을 끊임없이 돌보며 전화 및 방문을 통해 심리적 도움을 준다. 한 달에 한 번씩 월 미사를 진행하고, 위령의 날인 11월 2일에는 호스피스를 거쳐간 사별 가족들과 모여 ‘사별 가족 추모제’를 지낸다. 이를 통해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지켜본 다른 유가족들과 함께 그동안의 추억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성희 수녀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 환자들의 고통은 환자 본인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모든 순간을 환자를 위해 환자 입장에서 배려하며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호스피스는 환자가 마지막까지 삶을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하는 웰 다잉(Well Dying)이자 남겨진 가족들이 사회로 건강하게 복귀해 웰 리빙(Well Living)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신기호 기자 skh@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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