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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선신<농협대학교 교수/법학박사>
일본 사람을 대해 보면 대체로 친절하고 성실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세계의 많은 나라 사람들이 다시 방문하고 싶은 나라로 일본을 꼽는 이유가 우연히 생긴 게 아니다.

 그런데, ‘개인으로서의 일본인’과 달리 ‘집단으로서의 일본인’ 내지 ‘국가로서의 일본’에 대한 이미지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최근 다케다 스네카즈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회장이 2020년 도쿄올림픽 개최지 선정과 관련해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프랑스 사법당국으로부터 수사를 받고 있는 사실, 아베 일본 총리의 최대 치적인 ‘아베노믹스’가 통계 조작에 따른 허구로 드러났다는 사실, 어느 기자 지망생이 유명 저널리스트로부터 성폭행 당한 사실을 미투 폭로했다가 주변의 압박을 못 견디고 일본에서 영국으로 생활 터전을 옮겼다는 사실 등을 떠올리면 일본인들에 대해 가졌던 좋은 인상이 낙담으로 바뀐다.

 수년 전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평화공원, 원폭자료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다량의 기록·전시물을 통해 원폭 투하로 수많은 일본인이 죽고 다치는 등 막대한 피해를 당했다는 점을 크게 강조할 뿐 전쟁 발발의 원인과 원폭 투하에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었다. 줄지어 관람하는 다수의 학생 등 방문객들이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적잖이 우려됐다.

 지난 1월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적 인물이었던 김복동 할머니는 생전에 간절히 소망하던 일본 정부의 진솔한 사과를 끝내 듣지 못한 채 93세로 한 많은 일생을 마감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자행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 왜 그토록 반성과 사과에 인색한가. ‘천황제’라는 독특한 정치체제에서 그 원인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잘못을 인정하면 최고 지도자인 천황의 잘못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이를 극구 부인한다는 것이다. ‘왕은 잘못을 행할 수 없다(The king can do no wrong)’는 전근대적·봉건적인 믿음을 신앙처럼 떠받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최근 일본은 해상자위대의 초계기 저공비행 등 도발적 행동을 통해 우리 국민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일본을 ‘전쟁 수행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평화헌법 개정에 줄기찬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아베 정부가 남·북한 간의 화해 분위기 진전을 초조감 속에 지켜보다가 벌인 ‘계산된 긴장 조성’이 아닌가 의심된다.

 그렇지만, 일부 일본인들은 ‘양심적인’ 훈훈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작년 11월 초 일본의 다수 변호사·법학자들이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과 관련해 자국 정부의 비이성적 대응을 비판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달 26일에는 일본인을 구하다 숨진 이수현(당시 26세) 씨를 기리는 18주기 추모행사가 사고현장인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일본 시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지난 6일에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지식인 226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야말로 한·일, 북·일 관계를 지속·발전시키는 열쇠"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한·일 관계의 발전을 위한 토대 마련은 정부와 정치인보다 ‘양심적 시민들’의 노력에 먼저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인들은 개인적 성향보다 집단적 성향이 강하므로 자기네 정부의 입장을 무시하고 친한적 태도를 취하는 시민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민간교류의 폭을 넓히면서 그들의 양심과 염치를 깨우는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야 한다.

 3·1정신은 자주·자결을 기초로 한 국제평화질서 구축을 주창한 위대한 정신으로서 한·일의 양심적 평화애호 시민들에 의해 공유돼야 하고, 그 가치의 계승을 통해 선린우호하도록 연대해야 한다. 우리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하며,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라고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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