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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순휘 정치학박사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정의했다. 또한 카는 역사를 살펴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는지를 찾아보고, 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해서만 미래에 대한 건전하고 균형 잡힌 전망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과거는 살펴볼 수 있는 것이고, 현재와 과거가 대화하면서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를 건전하게 열어가자는 관점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어야 국가의 안정과 안보가 튼튼해지는 것이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문화하고 있으나 과연 요즘의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는가 하는 우려가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에 근거한다. 그러나 「한국, 한국인」의 저자 마이클 브린 전 주한외신기자클럽 회장은 "한국인은 민심(民心)을 따르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믿지만 공화국은 제도에 의한 통치(질서)를 뜻한다"라고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통념에 일침을 남겼다. 이 의미는 국가 공권력조차 민심보다 하순위로 간주된다면 민심에 좌우되는 무정부(anarchy)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우리 민주주의의 모순과 약점을 정확하게 경고한 것이다. 주말에 서울시내는 곳곳이 시위대로 넘쳐난다. 시위하면 법도 무력화되고 바꿀 수 있다는 민심을 빙자한 우격다짐을 자유민주주의로 착각하는 걸까?

최근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해 진실이니 거짓이니 시작해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니 안 했니 그리고 유공자가 가짜니 진짜니 뿐만 아니라 늘었니 줄었니 등 진실이냐 거짓이냐를 넘어서 그럴 리가 있냐는 의혹이 혼재돼 국민적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로 갈려 있고, 여야가 싸우고, 지역끼리 다투고,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요즘 같아서는 나라의 미래가 안 보인다는 탄성이 나온다. 이런 정국의 발단은 지난 2월 8일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가 공동 주관한 ‘5·18공청회’에서 지만원 박사의 ‘북한군 개입설’에 대한 주장에 앞서서 축사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한 발언이 시시비비가 되면서 격론의 난장판이 돼 있다.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건 한두 개나 한두 사람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전후좌우의 복잡한 요인과 변수에 의한 결과적 사실(facts)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역사의 영역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일구일언을 문책하는 것이나 과격한 발언도 위험하기 매일반이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1970년대는 박정희 정부의 장기집권과 개발독재 정치에 대한 국민적 저항으로 형성된 민주화 요구와 반정부 기류가 팽배했었고, 1979년 10·26 시해사건이라는 초유의 권력내부 반란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맞았던 것은 사실이다. 정치권은 사분오열 집권을 위한 정쟁에 몰두했고, 1980년 봄 전국적인 데모사태가 신군부의 정치 개입을 반대하면서 무정부상태라고 할 정도로 사회적 혼란이 장기간 지속됐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국가보위’라는 명분을 걸고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로 민주헌정 질서를 중지시켰던 것은 사실이다. 3김에 대한 정치탄압이 결과적으로 광주민심과 충돌했고, 대규모 반신군부 시위가 연일 계속됐고, 당시 광주의 시위규모가 경찰력으로 치안질서를 회복하기에는 불가할 정도로 확산됐던 상황에서 첫 유혈사태가 5월 19일 나주금성파출소 습격사건에서 2명이 사망하는 불상사로 발생했다. 광주는 외부 접근이 봉쇄된 가운데 무장투쟁화됐고, 계엄군이 5월 27일 전격적인 무력 진압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현대사의 비극으로 남겨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18 광주정신으로 계승돼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런 일에 목숨 바쳐 헌신한 희생자와 유공자를 정확히 알려야 하고, 알고자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나라사랑의 마음일 것이다. 국회의원의 실언을 제명으로, 지만원 씨의 주장을 증거 없이 광인으로 몰아가는 마녀사냥보다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전권을 갖고 증거와 증언을 근거로 진실과 허위를 가리고 의혹에 정리해 줄 수 있도록 정쟁을 중단하고 기다리는 인내심도 요구된다. 제기된 의혹들은 광주시민군을 지휘한 자의 신분, 기아자동차 공장에 있었던 장갑차 4대와 군용차 382대를 탈취한 자들의 신분, 광주교도소로 5월 21일 12시와 19시 20분, 22일 00시 40분과 09시 그리고 10시 20분과 19시에 걸쳐 총 6회를 무장 공격했었던 사람들, 시위대에 최초 발포명령을 내렸던 책임자, 헬기 기총사격을 명령한 자, 5·18 유공자 명단공개와 정확한 공적 여부 등 총망라해 확인하기를 기대한다. 이런 국민적 의혹들이 더 이상 과거의 시간에 묻히기 전에 ‘5·18 진상규명위원회’에서 눈치 보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조사해서 국론분열을 종식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백년대계의 국가안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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