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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100년 전,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3·1독립만세를 뒷받침하는 독립선언이 잇달았다. 일련의 선언은 우리의 자주독립국가를 향한 민중들의 의지를 더 다지게 했고, 국제사회에 한민족의 독립에 대한 뜻과 열망을 드러내는 거사였다.

 그 토대 위에서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곳곳에서 임정 수립 100주년을 맞는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예전처럼 형식적 행위로 그쳐서는 안 된다. 지금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100년 전의 그 정신이 실현하고자 했던 나라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했으며,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100년 만의 응답을 해야 한다.

 응답은 여러 가지로 다양한 방법으로 해야 하겠지만 제안한다면 박물관이나 관련 기념관 참관을 일반 관광의 성격이 아닌 교육관광이 되도록 하는 일이다. 그곳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스미스소니언박물관이나 일본 규슈 다지이후의 덴만구 같은 곳에 부모들이 자녀들의 손을 잡고 마치 놀이동산에 놀러 온 것처럼 찾는 까닭과 그 결과를 헤아려 보자.

 박물관 측은 1차적으로 박물관을 시민들의 과학 관문이라 인식해 아동들에게는 재미와 동기를 부여하고 성인들에게는 기초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덴만구는 1천여 년 전 대표적 학자였던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신사인데 한마디로 ‘교육열’을 파는 곳이라 보면 된다. 신사 입구에 있는 황소 동상의 얼굴과 뿔은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하버드대학 설립자 존 하버드의 동상 왼쪽 발이 빛나는 것처럼. 황소의 얼굴을 만지면 원하는 학교에 합격한다거나 성적이 오르도록 기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라지만 아무튼 교육관광의 메카가 돼 있다. 우리의 현실을 살펴보자. 초등학생 때 단체로 박물관이나 기념관 등을 방문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횟수가 줄어들거나 야외 학습의 방편으로 될 뿐 교육적 측면이 별로 중시되지 않는다.

 물론 그곳에서 제공되는 교육 프로그램의 수준도 문제가 있다. 벌써 10년도 훨씬 전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방한했을 때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는 별로 필요하지도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충고의 지적을 했었다. 그러나 아직도 교육제도는 물론 이 지적을 귀담아 듣는 방안은 답보 상태에 있다. 임정 대통령을 지낸 박은식의 표현대로 100년 전의 시위가 ‘충(忠)과 신(信)을 갑옷으로 삼고, 붉은 피를 포화로 대신한 창세기 이래 미증유의 맨손혁명’이었다는 설명은 오늘의 우리에게 그저 기록 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오장을 칼로 에어내는 듯한 말보다 눈물이 앞서 붓을 든 손을 떨어야 했던’ 늙은 학자의 그 마음 역시 똑같다.

 오늘날 독립투사 후손도 소수이고 친일파 자손들도 별로 많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운이 좋았거나 현실에 둔감했거나 비겁해서 살아남은 후손들이다. 죽은 자들이 대신 죽어서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죽은 자를 기억하는 일은 아직도 멀었다.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갔으나 이름을 남긴 사람은 손꼽을 정도로 많지 않다. 그마저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만이 아니다. 중국 땅에 묻혀 있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다시 공동 발굴하는 일이나 상하이 루쉰공원에 있는 윤봉길기념관은 십여 년 전만 해도 하루 300∼400명이 꾸준히 들렀던 곳인데 요즘은 10분의 1 정도로 줄어들었고, 윤 의사의 시문(詩文)이 적힌 부채 등 기념품도 전시만 돼 있을 뿐 기념품점은 문이 닫힌 지 오래됐다고 한다. 시간은 기회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100년 만의 봄도 훌쩍 지나갈 것이다.

 지금의 기회를 지속적으로 활용해 100년 전의 말을 기억하고 그들을 우리 곁에 둬야 미래의 선진국 대한민국이 가능하다. 역사 교육이 시험 점수로 평가되는 한 토플러의 지적은 계속될 게 뻔하다. 국민정서가 생활과학화되는 일도 시급하고,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내일을 바라보는 일은 더욱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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