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빨갱이’라는 단어를 공식 석상에서 언급했다.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친일 잔재 청산을 강조하며 꺼낸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일제는 독립군을 ‘비적’으로, 독립운동가를 ‘사상범’으로 몰아 탄압했다. 여기서 ‘빨갱이’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언급했다. 이어 "사상범과 빨갱이는 진짜 공산주의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았다.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까지 모든 독립운동가를 낙인찍는 말이었다"고도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경쟁 세력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도구로 빨갱이란 말이 사용되고 있고,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대표적인 친일 잔재"라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야당은 "좌파 운동권 수준의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폄훼하는가 하면, 일부 보수 언론은 ‘빨갱이를 빨갱이라 부르지 못하는 나라’라는 제목의 칼럼을 싸지르며 대통령 발언을 문제삼기도 했다.

 ‘빨갱이’란 단어의 어원은 일제강점기 때 항일무장유격대를 지칭한 ‘파르티잔’(빨치산)에서 나왔다는 설과 구(舊) 소련의 국기 색깔이 빨간 데서 유래했다는 설 등 다양하다. 하지만 이 단어는 해방 직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정적 등 저항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철퇴(鐵槌)’였다는 게 정설이다.

 한신대 석좌교수인 도올 김용옥 선생에 따르면 한때 ‘여순반란사건’(1948년 10월 19일)으로 명명됐던 여순항쟁을 계기로 우리 역사에서 빨갱이라는 말이 생겼다. 빨갱이이기 때문에 도륙된 것이 아니라 죽었기 때문에 빨갱이라는 딱지가 붙는 참혹한 시대였다.

 김 교수는 "당시는 그나마 빨갱이로 몰려 조사받고 재판을 받으면 행복한 상황이었을 정도"라고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절차 따윈 상관없이 마음대로 ‘인민’(보통 사람)들의 생사여탈권을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는 점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군인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정통성이 없어질 것을 우려했다. 결국 소련의 지령을 받은 남로당 프락치들이 민간 공산당과 합작해 일으킨 사건으로 몰았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빨갱이라는 표현은 삶과 죽음을 좌우하는 단어였다. 친일 잔재든 독재정권의 잔재든 더 이상 색깔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대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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