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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역사이고 정치인가?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역사소설가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3월 07일 목요일 제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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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베트남 혁명의 아버지로 불리는 호찌민(1890~1969)은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사회주의 독립투쟁가였고, 미국에 대해서 호의적인 시각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가 하노이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 독립을 선언할 당시 국명에 ‘사회주의’라는 이름을 넣지 않았으려니와 독립선언문 첫머리를 미국의 독립선언서에서 빌려와 거의 같게 한 일을 우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모든 인민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는데 그러한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다른 표현은 ‘사람’ 대신에 ‘인민’을 사용한 것뿐이다.

 그가 오랫동안 사용한 가명이 ‘응우옌 아이 꾸옥(阮愛國)’인데 여기서 호찌민이 품었던 뜻을 읽을 수 있다. 프랑스 침략에 식민지가 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이야말로 젊은 호찌민의 모든 것이었다. 그가 이 가명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19년 1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표방했을 때였다. 당시 파리에 망명해 있던 그는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에게 베트남의 자립과 언론·결사·종교의 자유 등 8개 요구사항을 청원서로 작성해 제출하는데 이때 서명한 이름이 바로 ‘애국자 응우옌’이었다.

 이 청원서는 베트남의 독립을 주장한 것도 아니고 자치만 요구한 것인데도 아무런 반응을 얻지 못했다. 소위 민주주의를 한다는 연합국 어디에서도 약소국을 배려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후 호찌민은 강대국의 호의에 기대는 것이 잘못임을 깨닫고 베트남 독립을 향한 투쟁의 길로 들어선다. 먼저 프랑스 사회당에 입당했고, 판 쭈진 등 민족주의 운동가들과 함께 지내면서 허수아비 황제지만 당시의 카이 딘에게 하야를 요구하는 이른바 ‘칠점표(七點表)’ 서한에도 간여했다. 황제가 잘못한 일로 군주제의 찬미, 귀족들의 권력 남용, 형벌의 불공평, 부도덕할 정도의 사치 등을 질타했던 것이다. 이 무렵에는 투르에서 열린 사회당 대회에 인도차이나 대표로 참석해 식민지 문제에 적절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온건파와 대판 싸우고 이를 계기로 급진파가 탈당해 만든 프랑스 공산당에 가담하게 된다.

이후 그가 귀국해 베트남 공산당을 만들고 혁명의 첫 단계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토지 혁명을 내걸었다. 전자의 목적은 프랑스 식민 당국이라는 제국주의와 후에 왕정으로 대표되는 봉건주의를 타도해 민족의 독립을 달성하는 것이고, 후자는 제국주의자들과 그들에게 결탁한 대토지 소유자들의 토지를 몰수해 농사 짓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이었다. 한마디로 호찌민이 공산당의 일반론을 거론하긴 했으나 그에게 혁명은 민족독립과 같은 의미이기도 했다.

 호찌민은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단호히 ‘어느 쪽이 식민지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냐, 베트남 독립에 가까운 길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결정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레닌의 ‘민족과 식민지 문제에 대한 테제’를 읽고 흥분에 휩싸였는데 그 테제는 ‘식민지에 달라붙어 약소민족의 고혈을 빨아먹는 제국주의 촉수를 잘라내라’고 촉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감정이 북받쳤다. 눈앞이 훤해지는 듯했고, 가슴에는 열의와 자신감이 뿌듯하게 가득 찼다. 너무 기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훗날 국가 주석이 된 호찌민이 레닌주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오로지 동포를 식민지의 질곡에서 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50년. 베트남은 도이 머이(쇄신)을 단행하고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경제 발전이 눈부시다. 호찌민이 꿈꾼 그 나라가 점점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찍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사상가나 그런 위치에 있지 않고 전략가라면 받아들이겠다." 민족의 지도자가 동포를 위해서라면 어떤 권모와 지략도 서슴지 않겠다는 그 말이 새삼 가슴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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