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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장원 인천재능대학교 교수

일제강점기 군수물자 생산의 전진기지였던 인천에는 지금도 당시에 세워진 공장과 근로자를 수용하기 위해 만든 사택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부평 미쓰비시 사택은 국내 강제징용의 역사를 간직한 대표적인 유산이다. ‘삼능줄사택’이란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이곳은 작년 11월 대법원이 확정한 미쓰비시 강제징용배상 판결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처럼 상징성이 큰 역사의 현장은 보존돼야 마땅하지만, 부평 미쓰비시 사택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첨예한 대립구도는 쉽사리 결론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대다수의 주민은 장기간 방치돼 쓸모없는 건물이니 철거하라 주장하고,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역사의 현장을 보존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친다. 벌써 몇 년째 같은 주장이 반복되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오는 22일 ‘미쓰비시 사택의 가치와 미래, 그리고 부평’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토론회를 통해 대안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만족할 만한 방안이 나올는지는 의문이다.

 논란이 거듭되는 사이 수십 채의 건물이 사라졌다.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추진한 ‘새뜰마을사업’에 따라 17채를 철거했으나, 당초 들어서기로 했던 주민 공동이용시설은 세워지지 않은 채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더구나 철거 전에 당연히 진행했어야 할 실측조사와 같은 기본적인 절차도 이뤄지지 않아 많은 이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조만간 철거 예정인 주민복지센터 건립 부지 안에 위치한 사택만큼은 제대로 된 절차를 이행해 조사보고서와 유구의 일부라도 남기는 방안을 찾기 바란다.

 비단 철거만이 문제가 아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줄사택은 대부분 허물어진 상태라 원형 보존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 즉, 부평 미쓰비시 사택 중 역사적 상징성을 간직한 줄사택의 원형을 보존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은 요원하고, 주민의 반대도 거세다. 그렇다고 역사적 가치를 간직한 건물을 흔적 없이 철거하면 역사를 단절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이처럼 보존과 철거를 놓고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주민이 원하는 시설을 줄사택 형태로 짓거나, 복원이라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치장하면서 단지 구석에 사택을 새로 짓는 타협점이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전면 철거만큼이나 비문화적 행태이다. 역사적 현장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건물을 새로 짓는 일은 건축물에 내재된 역사성은 무시한 채 허상을 만들어내는 행위에 불과하다. 역사성은 같은 장소에 크기와 형태가 같은 건물을 세운다고 살아나지 않는다.

 건축물이 역사 문화적 가치를 간직하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건축물과 함께 그 안에 점철된 인간의 삶이 배어야 한다. 건축적 가치가 다소 부족한 부평 미쓰비시 사택이 중요한 이유는 그 안에 서린 강제노동의 흔적에 기인한다. 징용노동자의 고통과 삶이 배제된 새 건물은 보는 이의 눈을 현혹하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며칠 전 현장을 둘러보면서 벽체의 일부를 떼어내 남기고,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사택과 방앗간이었다고 전하는 건물을 보수해 주민편의시설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봤다. 이러한 대안이 결코 최선은 아니다. 더구나 각기 다른 입장에 선 여러 주체가 모두 만족하는 묘수는 어디에도 없다.

 허공으로 사라지는 목소리가 아니라,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머리를 맞대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입장에서 벗어나 대립상태를 해소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서로 말이 통한다고 공감하는 때에 이르면 묘수가 나타날 것이다. 부평 미쓰비시 사택의 문화적 보존 방안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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