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쉐라톤그랜드인천 호텔에서 열린 새얼아침대화에서 연사로 나선 전강수 교수가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주제로 말하고 있다.  <새얼문화재단 제공>
▲ 13일 쉐라톤그랜드인천 호텔에서 열린 새얼아침대화에서 연사로 나선 전강수 교수가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주제로 말하고 있다. <새얼문화재단 제공>
"부동산 시세차액과 임대소득 추산치는 2016년 기준 505조 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상회한다. 개인 토지소유자의 상위 10%가 전체 65%의 땅을 갖고 있다. 법인은 상위 1%가 전체의 75%를 차지한다."

13일 쉐라톤 그랜드 인천 호텔에서 열린 ‘제394회 새얼아침대화’에서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부동산공화국 경제사’라는 주제로 이날 고견을 전했다.

전 교수는 "한국의 별명 중에 ‘부동산 공화국’, ‘강남 공화국’이라는 어두운 표현이 있는데, 현 상태로 보면 지나친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리게 된 배경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했다.

그는 "1945년 해방 이후 1960년대까지 농지개혁을 통해 토지의 평등한 소유가 가능했던 우리 사회는 불로소득을 노리는 부동산 투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부동산 공화국의 문을 열어 젖힌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라고 했다. 당시 독일을 순방한 박 전 대통령은 그곳의 고속도로에서 영감을 얻어 경부고속도로사업을 추진했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세계 최대 규모(2천644만여 ㎡)의 영동(강남)지구 구획정리사업을 통해 고속도로 부지와 재원을 확보했다.

또 서울시장이 주도한 강변도로 사업 등 한강 개발계획도 같은 맥락이었다는 게 전 교수의 설명이다.

전 교수는 "구획 정리와 공유수면 매립, 개발촉진지구 지정 등을 통해 한국은 1970년대부터 국가가 주도하는 대단위 아파트 건설이 시작됐고, 교육과 부동산 투기로 세워진 강남에서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시작됐다"고 했다. 1963∼1979년 사이 서울 압구정동은 그 전보다 땅값이 875배, 신사동은 1천 배, 학동은 1천333배가 뛰었다. 그는 "강남의 신화는 ‘토건 국가’ 이데올로기로 이어졌고, 건설사 등 토건족의 이해관계가 국가의 경제정책을 좌우하는 기형적 경제가 고착화됐다"고 했다.

전 교수는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양극화 ▶주거비 상승·가계부채 누적 ▶기업이 투자보다 지대 추구 몰두 ▶임대료 상승·자영업자 내몰림 ▶결혼 기피·출생률 저하 등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심화됐다고 했다.

그는 "아파트와 땅으로 불로소득을 얻어서 잘 사는 그런 사람들이 많은 사회는 미래가 없다"며 "땅이 아닌 땀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했다.

김종국 기자 kjk@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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