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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높이 올라간 용(龍)

김호림 칼럼니스트/전 인천대 겸임교수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2019년 03월 15일 금요일 제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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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호림 칼럼니스트

목련과 매화가지에 서둘러 피는 꽃들은 벌써 봄을 알리는 신호이다. 이 소식들이 북녘까지 전해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영변 약산의 진달래’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소월의 시가 있던 그곳은 이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북한의 대표적 핵시설이 돼 버렸다.

 지난달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은 양쪽의 주장이 양립할 수 없는 난해한 제로섬 협상이었다. 북한은 김 씨 왕조의 생존권이 걸린 핵과 미사일을 폐기할 수 없으며, 미국 또한 북한의 핵과 대량학살무기를 그대로 둘 수가 없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경우 동아시아 전체가 핵 정글이 될 뿐 아니라, 소형 전술 핵무기를 만들어 중동의 테러리스트들의 손으로 수출되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트럼프는 김정은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 왜 하노이로 갔을까? 외신은 트럼프가 자기의 협상력과 제재 지렛대를 너무 과신한 것으로 분석했다. 핵을 포기할 경우 북한에게 경제대국의 환상을 보여줬으나, 경제문제는 김정은의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북한은 제재가 있는 미래는 예상할 수 있으나, 핵무기가 없는 미래를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김정은은 실무급회담에서의 세부적인 논의보다 트럼프와 일대일로 만나면 많은 것을 양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오판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을 설득하고 양보를 바라는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이번 회담의 성과는 ‘비핵화’의 의미를 분명하게 정의한 것이고, 미국은 대량살상무기까지 의제로 포함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더욱이 미국의 의회와 조야의 여론이 북한에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 그리고 인권문제까지 요구하고 있으므로, 앞으로 양국 모두 강경론의 입지가 강화될 것으로 여겨지며, 북한은 불쾌한 항의의 표시로 제한된 도발을 시도할 것이다. 협상에는 협상자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경우 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안(BATNA)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게는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불리한 것이 없다는 것이 대안이었으나, 북한에게는 이런 수단이 없었다.

 여기에서 북핵의 배경이 돼 온 시진핑의 ‘중국 몽(夢)’구현과 미국의 대응정책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은 ‘일대일로’,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설립, ‘중국제조 2025’, ‘남지나해 인공 섬 구축’, ‘강군 몽(强軍 夢) 2050’ 등 일련의 중국의 경제·군사적 굴기를 과시했다. 미국은 이를 허용할 수가 없다. 이는 미국이 2차 대전 이후 구축한 세계질서는 물론, 미국의 글로벌 패권에 도전하는 새로운 냉전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국의 패권 움직임에 대처하기 위해 오바마 정부는 ‘아시아회귀’,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표방했으나 외교수사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미국제일주의’를 표방한 트럼프 정부는 의도적인 듯 싱가포르 북미회담 얼마 후인 1918년 7월 6일 중국 상품 2천억 달러에 수입관세 부과를 발표, 대중국 무역전쟁을 촉발시켰다.

 이러한 미국의 신호는 북한 핵문제를 대중국 무역전쟁과 패키지로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그간 중국의 비호와 기술 지원에 의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개발했다. 그런 후 이를 지렛대로 한반도에서 중국을 대리해 미국을 자극함으로써 한미동맹 해체와 미군철수를 획책하는 그들의 노림수를 미국이 모를 리가 없다. 따라서 미국은 먼저 북한의 유일한 후원국인 중국을 경제적으로 무력화시킴으로써 북한 문제에 손을 떼게 만드는 선제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4일 펜스 부통령의 허드슨연구소에서의 연설이 바로 대중국 전쟁선언이었다. 단순히 관세뿐 아니라 미국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전략산업의 기술 절도를 포함한 지적재산권 문제와 금융제재 등 미국이 중국에게 구사할 수 있는 자원과 수단은 다양하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환경에서 김정은은 시진핑 도움 없이 미국과 승산 없는 외로운 전쟁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이때 문재인 정부의 판단과 선택이 이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게 된다. 낭만적인 민족 공조나 남북 경협은 난국을 불러올 수 있다. 유엔과 미국의 경제·금융제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과 지는 패권게임을 하고 있는 중국 편에 서거나, 한미동맹 약화와 대일본 관계 악화 시도는 이 나라를 고립무원으로 만들 것이다.

 주역에는 ‘높이 올라 간 용에게는 후회만 있을 뿐, 그가 귀할 지라도 자리가 없어지고, 높지만 백성이 없으며, 어진 사람들이 아래에 있어도 도움이 될 수 없으므로, 그가 움직일 때마다 후회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싱가포르와 하노이를 분주히 오갔던 북한의 오만한 젊은이의 모습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수령을 신비화하면 진실이 가려진다’는 선문답 같은 최근 그의 멘트는 이런 뜻을 눈치챈 듯 예사롭지 않은 기시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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