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15일(현지시간)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재개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미국과의 협상중단 고려 카드를 꺼내든 데 대해 '협상 지속 기대'와 '약속 이행 촉구'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내놨다.

미국이 요구한 일괄타결식 빅딜론에 '수용 불가'로 쐐기를 박고 '벼랑 끝 전술'을 구사, 공을 넘긴 북측을 향한 답신이다. 대북협상 총괄책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입'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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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즉각적인 대응보다는 북측에 대한 자극적 언사를 피하며 신중함을 견지, 판이 깨지는 극단적 시나리오는 막고 협상 테이블로 북한을 견인하려는 '상황관리 모드'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포스트 하노이' 국면에서 감지된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에 "북한이 실험을 재개한다면 매우 실망할 것"이라고 경고장을 보내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이날 관련 트윗 등 공개적 반응 없이 일단 '로우키 행보'를 이어갔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미국 시간으로 전날밤 열린 최선희 북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과 관련, "북한과 협상을 지속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 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핵·미사일 시험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김 위원장의 약속을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며 북한이 하노이에서 내놓은 제안은 미국의 눈높이에 못 미친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이와 함께 '북한이 지명한 나의 카운터파트'와 대화하길 바란다며 '폼페이오-김영철 라인'의 고위급 회담 재개에 대한 희망 사항도 내비쳤다.

'미국의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배수의 진을 친 북한에 대해 일단 대화 재개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히는 한편으로 핵·미사일 실험 중단에 대한 김 위원장의 '육성 약속'을 다시 한번 공개적으로 끄집어내며 압박에 나선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최 부상 기자회견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은 채 일단 '침묵'했다. 내부적으로는 당국으로부터의 보고 등을 받고 긴박하게 움직이며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향후 대응책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이 기회만 되면 자랑했던 대표적 대북 외교성과인 핵·미사일 실험 중단에 종지부를 찍고 실험 재개에 나선다면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내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시험 유예(모라토리엄)' 종결 여부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것도 이러한 틈새를 파고든 측면이 없지 않아 보인다.

이날 오전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국가 안보 당국자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테이블 위에 올려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의 일정은 최 부상의 기자회견 소식이 외신을 통해 타전되기 전에 공지된 것으로, 호건 기들리 백악관 부대변인은 "대통령이 펜타곤에서 군 당국자들 및 국가안보팀으로부터 브리핑을 받았다"며 세부 내용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다. 다만 AP통신은 이날 회의가 시리아 지역 내 IS(이슬람국가)의 마지막 점령지역을 재탈환하는 문제 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 측이 일차적으로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인 데는 최 부상의 기자회견이 실제 협상중단과 6·12 싱가포르 회담 이전, 즉 '핵단추 설전' 상황으로 회귀라는 파국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포스트 하노이' 국면의 밀당 과정에서 미국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충격요법일 수 있다는 분석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 측은 일단 북한이 핵·미사일 실험 중단 흐름을 깨고 도발하지 않도록 하는 등 비핵화 대화의 궤도에서 완전히 탈선하지 않도록 상황관리를 하면서 '다음 수'를 고민할 것으로 예상한다.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에 대해 분리대응에 나선 가운데 최 부상으로부터 협상 결렬 책임자로 지목된 외교·안보 '투톱'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이 결렬 책임론을 반박하면서도 자극적 반응을 피한채 신중론을 견지한 것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앞서 미국 측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볼턴 보좌관을 내세워 연일 빅딜론을 강조하며 제재유지 입장을 견지, 압박 메시지를 발신하는 한편으로 협상을 위한 문을 열어두는 차원에서 유화적 제스처도 동시에 보내는 등 강온 병행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러나 미국 측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 '일괄타결론'을 거둬들이거나 제재완화 등 북한이 원하는 상응 조치를 바로 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과거의 '시간벌기 전술'을 되풀이할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빅딜론을 일단 견지, 주도권 확보를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하노이 회담장을 '걸어 나오면서' '배드 딜'(나쁜 합의)보다는 '노딜'이라는 입장을 공언한 상황이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 '미사일과 무기 시스템, 전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을 그 대상으로 다시 한번 적시하며 이를 견인하기 위한 제재유지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더욱이 트럼프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들의 잘못된 협상 전철을 밟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만큼, 북한의 페이스에 말리지 않겠다는 기조를 유지하며 당분간 '밀당'을 이어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는 북한을 옥죄고 있는 제재라는 무기를 유지하는 한 '시간은 미국 편'이라는 인식도 깔려 있어 보인다. 볼턴 보좌관도 지난 10일 방송 인터뷰에서 "지렛대는 우리 쪽에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더욱이 북한의 벼랑 끝 압박으로 인해 미국 내 회의론이 고조되거나 실제 북한의 도발 등이 현실화 경우 트럼프 행정부도 강경 노선으로 선회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도 전날 의회 청문회에서 "두 차례 정상회담 이후 우리가 다양한 비상사태(컨틴전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북한이 실제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하는 상황이 연출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관여 드라이브는 큰 시험대에 놓일 수 있다. 민주당의 견제가 갈수록 거세지는 상황에서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운신의 폭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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