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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

숨쉬기조차 힘든 미세먼지 속에서도 새내기들이 가슴에 이름표를 매달고 어김없이 캠퍼스에 등장한다. 아직 낯설어 보이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들은 젊은 날의 꿈을 여기서 키워 갈 것이고, 대학은 그들이 이상을 펼치도록 다양한 가능성들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요즘,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는 학생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서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비싼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대학을 찾는 이유는 꿈을 키울 마땅한 대체물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육은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다. 사람과 동물 사이의 가르침도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교육이라 부르지 않는다. 혹시 그런 일도 교육이라 한다면 은유적 표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누군가 길을 물어봤고, 그것을 단순히 알려 줬다(transfer)고 해서 누군가를 교육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장된 표현일 것이다. 그러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육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무엇이라고 개념화하여 선명하게 제시할 수 없지만 지식교육과 대비되는 인성교육과 같은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곰에게 재주넘기를 훈련시키는 것과는 다른, 사람의 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 전달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됐느냐를 추구해야 할 가치의 전부라고 여긴다면 교육의 많은 부분은 포기될 것이다. 우리는 부모, 선생님과 같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성숙해 가면서 역사 속의 존재로 성장한다.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지식의 양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자아를 형성해 나간다. 그런 성장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 교육이라 한다면 지식의 전수만을 교육이라 부르기에는 허전함이라는 차액이 남는다.

 교육은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고대 그리스어로 사람과 사람이 정신적으로 밀도 있게 ‘만나는 것’, ‘같이 있음’을 ‘시누지아(syunousia)’라고 한다. 이것을 에둘러 설명한 것이 플라톤의 「향연」이 아닐까 싶다. 「향연」은 향연에 참여한 여러 사람들이 각각 에로스에 대해 돌아가면서 말한 의견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모두가 그럴듯한 사랑(에로스)의 얘기를 했지만, 그 중 당시 최고의 극작가로 손꼽히던 아리스토파네스가 특별히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은 원래 온전한 존재였는데 인간이 신의 자리를 넘보는 불경죄를 저질러 둘로 쪼개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잃어버린 다른 한쪽을 애타게 찾는데 그 마음을 에로스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다음 차례가 된 소크라테스는 아리스토파네스에 반론을 펼친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속한 신체 부위라도 병들어 썩으면 잘라내듯 원래의 자기 반쪽과도 합치려 들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인간은 아름답고 훌륭한 것에 대한 갈망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에로스라는 것이다. 그것을 전수하는 것이 교육이다. 그것은 영원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자신의 존재를 걸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화된 교육에서 이러한 교육이 가능한 것일까?

 고전문헌학 교수였던 니체는 대중교육이 독일 교육의 미래를 망치고 있다고 독일 교육을 강하게 질타한다. 24세에 바젤대학교 교수가 돼 27세 다섯 차례에 걸쳐 행했던 강연이 「니체, 평준화 교육에 반대하다」라는 책으로 번역돼 있다. 엘리트 교육을 강조하는 그의 생각이 위험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대중교육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최저임금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하버드대 대학원 교수가 된 토드 로즈의 「평균의 종말」은 대중교육의 평균주의에서 벗어나 학생 개개인을 중요시하는 교육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성적 대신 실력 평가’, ‘학생들에게 교육진로 결정권 허용하기’의 세 가지 개념을 대학이 채택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은 대학과 사회가 먼저 선행해야 할 준비가 많을 듯싶다. 에디슨이 우리나라에서 공부했다면 낙제만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마스크를 쓰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언덕을 오르는 새내기들의 얼굴 위에 많은 상념들이 오버랩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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