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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현린 주필(主筆)

멕시코 이민사를 알려면 미국 하와이 이민사를 전제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하와이를 자국의 영토로 합병한 후 섬을 개발할 수 있는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 일본, 중국 등 각 나라에서 이민을 받아들였다. 미국은 중국인과 일본인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인 이민 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조선 정부가 하와이 이민 대리회사들이 이민자 모집 광고를 낼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도 지원자는 많지 않았다. 이유는 유교사상에 젖어 있던 조선인들이 조상의 뼈가 묻혀 있고 부모형제가 살고 있는 고국 땅을 떠난다는 것은 큰 죄악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초기 이민자 모집은 여의치 않았다. 그러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주 경영자협회에 의해 1902년 5월 9일 이민 모집 대리인으로 서울에 파견돼 있던 데슐러는 선교사들을 동원해 이민 설득에 나섰다. 이때 인천감리교회의 조 헤버 존스(Geo Heber Jones)목사는 "걱정할 필요 없습네다. 하와이는 기후도 좋고 살기 좋습네다. 조선보다 먹을 것이 많이 있으며 잘 살 수 있습네다"라며 적극적인 설득 작전을 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내 1902년 12월 22일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 하와이로 떠나는 이민자 121명이 선발돼 인천 제물포항에서 이민선에 올랐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이민이 성공을 거두자 당시 노동력 부족을 겪고 있던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주들과 어저귀라는 백마(白麻)농장 경영자들은 조선의 이민노동자 모집에 눈독을 들였다.

 멕시코 농장주들의 대리인으로 청국과 일본에서 이민 알선을 하던 미국인 마야스는 한국으로 건너와 멕시코 이민자들을 모집했다. 그는 하와이 사탕수수밭 이민자들보다도 더 유리한 조건을 내세우며 계약노동 이민자들을 모집하는 광고를 냈다.

 1904년 10월 15일까지 4개월 동안 1천33명이 응모했으나 조선 정부는 해외 이민은 장려하지만 계약노동은 노예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여권을 발급해 주지 않았다. 종국에는 그들의 설득에 넘어가 당시 외국 이민법을 잘 몰랐던 정부는 멕시코 이민자들에게 여권을 발급해 줬다. 정부 관료들이 계약노동도 자유노동이나 다름없다는 속임수에 넘어간 것이었다.

 1905년 3월 6일 마침내 마야스는 조선의 멕시코 첫 이민자 1천33명을 인솔해 인천 제물포 항구를 떠났다. 이들은 일본 요코하마에서 영국 상선 엘 보트로 옮겨 타고 인천을 떠난 지 두 달 10일 만인 5월 15일 멕시코 유카탄주 베라크루스 항구에 도착했다. 기록에 의하면 항해 중에 2명이 배 안에서 사망해 멕시코에 상륙한 이민자는 모두 1천31명이라 한다.

 이들 이민 노동자들은 메리다(Merida)지방에서 3일간 묵은 후 24개 지역으로 농장주들에 이끌려 나가 사탕수수 농장으로, 선인장 농장으로, 광산과 시멘트 공장으로, 어저귀 농장으로 끌려다니며 노예나 다름없는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고 유카탄 이민사는 전하고 있다. 이것이 한 세기 전 속아서 출발하게 된 우리의 아픈 멕시코 이민사 첫 장이다.

 인천시가 기업들의 중남미 시장 진출을 지원하기 위해 인천지역 중소 제조업체 시장개척단을 17일부터 오는 24일까지 5일간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수출상담회장에 파견, 제품의 우수성을 알리며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한다.

 중남미 지역은 그동안 미국, 중국 등에 집중된 수출시장 다변화에 따라 동남아와 함께 꼭 개척해야 할 시장이다. 중남미는 인구 6억4천만 명, GDP 5조 달러의 거대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인천 기업인들이 멕시코 시장을 개척하고 우리 손으로 만든 상품을 수출하려 떠났다. 인천 제물포항에서 노예 이민을 떠난 지 꼭 114년 만이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991년 정상회담차 대한민국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할 당시 특파원으로 멕시코에 파견된 바 있는 나다. 때문에 이번 인천 기업인들의 ‘선인장 위에 독수리가 뱀을 물고 앉아 있는 도시’,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중남미 수출상담회 참가 소식에 더욱 감회가 새롭다. 중남미 시장 개척단들의 시장공략 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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