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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훈 양서고등학교 진학부장

"‘입시’라는 단어가 이슈화 될수록 학벌체제는 더 공고해지고 학생들은 점점 불행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입시’라는 단어는 가장 많은 사회적 이슈를 제공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기업의 마케팅 수단처럼 입시가 이슈화 될수록 수험생과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사교육의 유혹에 빠져 든다. 현장에서 입시지도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보면 최근 입시환경은 너무나 많은 자원 낭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자원은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에 대한 시간과 비용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를 위해 수업, 비교과활동, 학생부 기록 등을 위한 교사들의 노고, 교육부가 대학교에 제공하는 예산 등 대학입시에서 비롯된 직간접적인 모든 비용을 말한다.

수능이 큰 비중을 차지했던 10여 년 전의 입시에서는 과도한 사교육비가 사회적 비용으로 확대됐다. 학교에서도 수능 공부를 시키기 위해 오로지 문제풀이에 교사들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다. 최근에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서울 주요대학 수시 전형의 절반을 차지함에 따라 학생부 기록, 소위 ‘스펙’을 위한 또 다른 사교육 시장이 양산되고 있다. 여기에 학교에서도 학생부 기록을 개별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수업과 비교과 활동을 진행하는 등 교사와 학생들은 1학년부터 애써야 한다. 학생부 기록에 대한 규정이 매년 개정되고는 있지만 교사와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커져만 가고 있다. 기록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 준비 내용, 기록 후 점검 및 관리 등 이전 입시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고된 일들이 많아진 것이다. 과거 입시는 3학년 담임교사의 역할이 컸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교사들이 담임, 동아리, 교과, 봉사, 진로 업무 등으로 수백 명의 학생부를 관리하는 경우도 상당수다.

다른 예로는 학생 평가와 관련된 부분이다. 수시입시는 물론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도 학업역량의 기준인 내신성적은 그 어떤 기록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로 인해 고교 주변에 내신반, 단과, 종합학원, 과외 등 새로운 입시시장이 열리게 됐다. 이처럼 수능이든 학생부 종합전형이든 이 모든 입시를 위한 비용, 그리고 구성원들의 노력과 투자를 사회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수십 조에 이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학벌’이라는 개념이 계속 존재하는 한 우리나라에 그 어떤 입시제도가 도입돼도 사교육시장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 학벌 타파가 어서 이뤄져야 할 것 같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대입제도라는 명명 아래 상위권 대학들의 가치는 더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 오히려 학벌에 대한 관심을 축소해야 하지 않을까? 아직도 입시철이 되면 뉴스 기사 속 수시·정시 배치표를 보며 배치표상의 위치가 대학의 서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공직자 및 기업 임원들의 출신대학 분포와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 수를 발표하고 있는 일부 언론사, 지나가는 길에 걸려있는 대학 합격 현수막 등을 보면 학벌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길은 멀어 보인다. 어쩌면 사교육시장 축소나 입시제도 개선을 위한 노력이 의미 없을 수도 있다. 노력을 하면 할수록 그 의미가 부각돼 학벌이 우리 사회에 더 깊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력을 다른 부분으로 돌린다면 우리 고교 교육의 현실은 지금보다 더 학생을 위해, 학생 중심으로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우리 교사들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대학을 위한 교육이 아닌 고교만의 특징을 가진 자율적인 교육과정과 운영체제를 제공하는 것이 학생, 학부모, 교사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이든 교육부든 수많은 교사들의 교육 비전과 가치를 믿고 고교 교육에 대한 전반을 맡겼으면 한다. 입시라는 명목 아래 집중돼 있는 여러 재원과 노력들이 우리 학생들의 꿈과 끼를 발휘하는 곳에 집중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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