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기범 아나운서.jpg
▲ 원기범 아나운서

제주도에 다녀왔습니다. 제주에서 몇 년 전부터 자녀교육 부모교육 특강 요청이 있었지만 여러 가지 사정상 가지 못했었는데 이번에 좋은 기회로 잘 다녀왔습니다. 강연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주는 벌써 완연한 봄이더군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돼서인지 강연장을 가득 메운 500여 학부모님들의 눈빛이 더 형형한 듯 보였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지난 겨울 최고의 화제 드라마 ‘SKY캐슬’의 잔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탓도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일부 부유층의 과도한 교육열을 꼬집은 내용으로, 1%로 시작해 20%대 중반의 시청률로 막을 내린 드라마였습니다. 명문대 입학에만 초점을 맞춘 입시교육, 그것을 편법으로라도 이루려는 부모들의 일그러진 욕망, 소위 ‘입시코디’의 존재 여부, 주인공들의 불꽃 튀는 연기대결, 거기에 미스터리 형식의 구성까지 겹쳐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드라마 종영 후 상당한 파장이 일었습니다. 극중 명장면과 유행어 패러디는 물론이고 높은 시청률로 인지도를 얻게 된 신인급 배우들은 여러 작품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광고도 여러 편 찍었습니다.

 여러 방송사들은 소위 ‘스카이캐슬 신드롬’이라며 다큐멘터리, 시사, 교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짚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최근 미국에서는 ‘미국 판 스카이캐슬’이라는 초대형 대학 입시비리 사건이 터져 충격을 주었습니다. 윌리엄 릭 싱어라는 사람이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에서 30년 가까이 입시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대학 운동부 감독들에게 뇌물을 주고 부정 시험을 알선하는 등의 수법으로 부유층 자녀들이 명문대에 합격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뇌물 액수만 2천500만 달러(한화 약 283억 원)에 달하고, 모두 761가족의 부정 입학을 도왔다고 하니 그야말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입시 비리사건입니다. 아직도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더 많은 부유층 학부모들이 입시비리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합니다.

 이번 사건은 유명 연예인, 기업인 등 부유층 학부모들의 비뚤어진 자식 사랑과 대입 컨설턴트의 거침없는 불법행위가 드러나 선량한 학부모들을 분노에 들끓게 했습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학교 성적 못지않게 사회성, 인성 등을 중시한다고 알려졌던 미국식 대입제도하에 이런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까지 큰 충격파를 던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모 지상파 TV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이른바 아버지들의 ‘바짓바람’에 대해 다뤘습니다.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들어와서 제대로 씻을 새도 없이 자녀들에게 밤늦게까지 영어 수학 등 주요과목을 직접 가르치고 학업 일정을 관리하고 있는 여러 아버지들의 사례가 방송됐습니다. 보통 사람은 절대 흉내조차 없을 정도의 열정과 헌신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 눈길을 끈 것은 아버지들의 엄청난 노력이 아니라, 그런 아버지를 둔 자녀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중학생인 한 아이는 아빠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제작진의 질문에 한동안 머뭇거리다가 "아빠가 매일 직접 가르치시면서 야단치시고 공부 이야기만 하시니까 사이가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아요. 아빠한테서 ‘수고했다’, ‘잘했다’, ‘괜찮아’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부모와 자녀 관계가 좀 멀어지고 다소 서로에게 상처가 되더라도 어쨌든 명문대에 보내만 놓으면 가족 모두가 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어느 부모이든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 방법과 그에 따른 결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자녀교육에는 ‘자녀들이 잘 성장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통과 공감이 필요합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