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채훈 삼국지리더십 연구소장1.jpg
▲ 나채훈 삼국지리더십연구소 소장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지난 12일 한국 대법원의 강제 징용 배상 판결과 관련해 "한국 상품 관세 인상과 송금 및 비자 발급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직전 산케이신문도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식처럼 한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물리면 좋겠다"고 했다는 보도를 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잘못을 반성하기는커녕 한국 법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사안에 경제 보복 운운하는 건 한마디로 ‘협박’이다. 더욱이 아소 부총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1만2천여 명을 강제 노역으로 부린 악명 높은 ‘아소 탄광’ 사장의 아들이다. 자숙해도 시원찮을 사람이 ‘보복’ 운운하는 것은 한일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 보인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3·1운동 100주년 즈음한 데모 등에 관한 주의 환기’라는 스폿정보에서 한국에 체재 중이거나 방문 예정인 일본인들에게 ‘만에 하나’ 피해를 당하거나 일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정보를 접하면 대사관에 알려달라고 했었다. 그들 눈에는 폭력적인 억압과 부조리한 지배에 이의를 제기한 ‘3·1운동’을 기념하는 것조차 ‘반일(反日)’ 딱지를 붙이고 증오·혐오의 의식을 부추기는 기회로 이용하려는 듯하다. 일본 자민당의 다카시 중의원이 연초 트위터에 "지금의 한국처럼 상식을 벗어난 나라에 가면 일본인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했던 그 연장선상에서 외무성이 나섰으니 말이다. 일본 누리꾼들의 반응은 전혀 다른데도…….

 "식당에 가면 아주머니가 ‘일본인? 이렇게 먹으면 맛있다’며 고기 굽는 걸 도와주거나, 길을 헤매면 서툰 일본어로 알려줘서 너무 힘들어." "더 먹으라고 반강제로 리필도 해주고 선물이라며 김치와 한국 김을 담아줬으니 한국에선 정말 뭘 당할지 몰라." 뒤틀리고 선동적인 정치인들에게 은근슬쩍 한 방 먹인 것이다.

 일본 천주교가 일본 침략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며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 가톨릭정의와평화협의회 가쓰야 다이지 주교는 "올해 3월 1일은 일본 천주교회도 역사를 직시하고 한반도를 비롯한 아시아인들의 평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를 다시 물어야 하는 날"이라며 "일본 천주교회는 일제강점기 한국 천주교회에 크게 관여했고, 신자들이 일본의 침략 전쟁에 협력하도록 촉구한 것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의 근원에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의 침략정책이라는 역사가 있다"고 했다. 따라서 "과거 일본의 가해 역사를 직시하며 문화·종교 등 시민에 의한 다양한 교류를 돈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지금 한일 관계는 일촉즉발의 형국이다. 감정싸움은 불 보듯 뻔하다. 만일 일본이 보복을 가하면 한국도 받아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서로 피해를 보더라도 갈 데까지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국교 단절이라는 위기 상황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그런 지경까지 내달을 수도 있다.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이 갈등을 국내 정치에 이용해 모종의 이득을 챙기려는 것은 아닌지, 국익보다는 감정에 충실하려는 것은 아닌지 양쪽 모두 이런 상황을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한일 인적 교류는 사상 최고인 1천만 명을 기록했다. 양국 간 정치·외교 갈등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는 지속되고 있으며, 이런 교류가 그나마 정치인들의 편향되고 왜곡된 주장에 휘둘리지 않고 서로를 헤아려보는 시민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런 교류가 지속되고 확대될 수 있을지는 걱정이 앞선다.

 분명한 사실은 한일 가운데 누구도 승자가 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일 갈등이 극대화되고 나서 어쩔 수 없이 타협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서둘러 협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일본의 대오각성도 촉구해야겠으나 우리 쪽에서도 전략적인 고민을 해야 할 것이다. 밉다고 내칠 수 있는 그런 관계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