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춘숙 춘천식당 사장이 식당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춘천식당의 69년 세월은 가난을 견뎌내고 가족을 일군 ‘어머니의 역사’다.

 1927년생인 창업주 정진순 씨는 한국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뒤 생계를 잇기 위해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 감자탕을 머리에 인 채 부둣가 판자촌이 즐비했던 인천시 동구 전도관과 하인천(지금의 인천역) 일대를 오갔다. 길거리에서 안줏거리를 팔다 1951년 지금의 아트플랫폼 터에 간판을 올린 것이 춘천식당의 모태인 춘천집이다.


 강원도 춘천이 고향인 1대 사장은 손님과 가족처럼 지내며 아낌없이 베풀었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감자탕과 복국, 물텀벙이, 꼼장어, 병어, 국수 등을 푸지게 차려냈다. 창업주의 구수한 손맛과 넉넉한 인심은 금세 입소문을 탔다. 당시 ‘춘천식당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가게가 붐볐다.

 1975년 춘천식당 외아들에게 시집 온 2대 사장 전춘숙 씨는 ‘돈 통이 넘쳐 수표와 현금이 바닥에 떨어져 있을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 5천 원에 팔고 있는 국수가 15원이던 시절이었다.

▲ 춘천식당의 창업자인 정진순씨의 생전 모습. <춘천식당 제공>
 옛 춘천식당이 있었던 2층 건물은 1층이 식당이었고, 2층은 살림집으로 썼다. 단골들은 2층까지 올라와 식사를 하기도 했다. 춘천식당 근처의 경기도경찰국(옛 인천지방경찰청) 손님이 많았다. 장부에 달아 놓고 밥을 먹었고 배달을 시키기도 했다. 옥상에서 장을 담그는 날이면 경찰국 사람들이 삼삼오오 구경하러 모여들었다. 항만산업이 꽃피면서 춘천식당에는 더욱 활력이 돌았다. 인천항 도크 내 한진과 대한통운, 선광, 항만청 등이 주 고객이었다. 고(故) 조중훈 한진 회장도 춘천식당을 즐겨 찾곤 했다.

 배달을 수시로 다니며 울고 웃었던 일화가 많다. 한 번은 대한통운에 배달을 간 며느리 전춘숙 씨가 손님에게 무례한 일을 당하고 오자 정진순 창업주가 쫓아가 뺨을 때린 일도 있었다. 홀로 식당을 꾸려 자식들을 키워 내면서 괄괄해진 1대 사장의 며느리 사랑을 알 수 있는 사건이다.

▲ 인천시 중구 춘천식당의 대표메뉴인 청국장찌개 한 상.
 춘천식당 성업기에는 시어머니 정진순 씨와 시할머니가 가게 운영을 도맡았기 때문에 전춘숙 씨는 배달을 하거나 장부를 정리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가 춘천식당을 온전히 이어받은 것은 한 차례 자리를 옮길 때 즈음이다. 춘천식당은 2009년 아트플랫폼이 개관하면서 지금의 자리인 중구 신포로 27번길 47로 이전했다.

 보상부터 이전까지 정신없이 이어지다 보니 식당에서 쓰던 물건도 제대로 챙겨 나오지 못했다.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보물들을 그대로 두고 온 전 씨는 두고두고 아쉽다는 뜻을 내비쳤다.

 2대 사장이 식당을 맡으면서 메뉴는 간소화됐다. 손맛을 담아 끓여낸 된장찌개 백반과 청국장이 주력 메뉴다. 생선찌개 백반과 김치찌개 백반, 제육볶음도 인기가 많다. 춘천식당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손님상에 냈던 국수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세월이 흐르며 메뉴 구성이 바뀌었지만 고등어조림과 콩나물무침, 김, 누룽지만은 반드시 내놓는다. 손님들이 춘천식당의 밥상을 집밥처럼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다른 데서 먹으면 이 맛이 안 난다"는 말이 좋아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반찬을 만든다.

▲ 전춘숙 춘천식당 사장이 지난 14일 인천시 중구 중앙동의 식당에서 젊은 시절 시어머니와 함께 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웃고 있다.
 선대 때부터 일을 도와주던 아주머니가 몇 해 전 건강 악화로 그만두면서 지금은 전 씨 혼자 식당을 운영한다. 새벽에 일어나 찬을 마련하고 점심 장사가 끝나면 오후 3시께 문을 닫는다. 늦은 밤까지 불이 꺼질 줄 몰랐던 과거와 달리 손님도 하루 15개 테이블 정도로 줄었다. 항만 종사자들이 하나둘 떠났고, 중구청이나 중부경찰서에서 찾는 인원도 많이 줄었다. 한산해진 거리가 아쉽긴 하지만 전 씨는 한 명의 손님이라도 정성을 다해 대접하자는 마음으로 식당 문을 열어 왔다.

 지난해 70대로 접어든 전 씨는 춘천식당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식당을 꾸려 가는 일이 점차 힘에 부치기 시작해서다. 지난해에는 한 차례 가게를 내놓기도 했다. 쉬기엔 이르다는 생각에 마음을 거두어들였지만 올해 말께 다시 가게를 접는 문제를 고민할 요량이다. 식당에 더 이상 미련이 없다. 창업주가 홀로 춘천식당을 세워 외아들을 키워 냈듯 전 씨도 식당일을 하며 세 자녀를 번듯하게 키웠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춘천식당의 역사가 아깝다고 하지만 누구 하나에게 물려줄 마음이 없다. 식당 운영이 얼마나 고된지 시집 온 뒤 평생 겪었다. 각자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자녀들이 자신과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 식당 주방에서 손님에게 대접할 식사를 준비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전춘숙 사장.
 아침 7시. 어머니들의 일생으로 일궈 낸 춘천식당은 오늘도 손님 맞을 채비를 한다.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노포(老鋪)에서 주름진 손의 주인장이 온기 가득한 밥 한 그릇을 담아낸다. ‘내 가족이 먹는 것처럼 대접해야 한다’는 창업주의 신념은 식당 문을 닫는 그날까지 이어질 터다. 대를 지킨 그 맛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로 화답만 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온 저녁 전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전 씨는 "시어머니가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도록 일러 주시고 식당을 남겨 주셔서 너무도 감사하다"며 "지금처럼 욕심 부리지 않고 주어진 만큼 정성을 다해 오시는 분들을 대접할 생각이다"라고 덧붙였다.

 힘들게 찾았다며 그가 전해준 빛바랜 사진 속 춘천식당은 정겨웠고, 고부의 모습은 퍽 다정했다.

 홍봄 기자 spring@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키워드

#춘천식당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