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인을 강제징용해 배를 불린 일본 전범(戰犯) 기업 제품에 ‘전범 인식표’ 부착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 제정이 추진돼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조례안은 도내 초·중·고가 보유 중인 일제 ‘전범 기업’ 제품에 ‘일본 전범기업이 생산한 제품입니다’라는 인식표를 부착케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한일 간에 불필요한 외교 마찰을 일으킨다는 반대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25명 등 도의원 27명이 발의한 이 ‘일본 전범 기업 제품 표시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되면 경기도교육감은 도내 모든 학교의 보유 실태를 조사해 그 결과를 매년 공개해야 하고, 20만 원이 넘는 제품에는 인식표를 붙여야 한다.

 하지만 도교육청은 전범기업에 대한 관계 법령이 부재하고, 제품 불매로 오인될 소지가 적지 않다는 판단 등에 따라 조례안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범기업에 대한 관리주체는 정부 및 지자체인데, 도교육청만을 대상으로 한 조례안 수용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 제품에 부정적인 인식표를 붙여 불매 분위기를 만드는 식의 어정쩡한 관제 불매운동은 국가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한일 외교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먼저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인식표 부착이 해당 제품 판매·납품업체 등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한국의 판매직원과 그 가족들에게 미칠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내 혐한 분위기가 높은 마당에 자칫 우리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비화될까 우려된다.

 교육적 차원이라 하더라도 ‘전범 인식표’를 붙이는 방식은 역사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 기업의 과거 그릇된 행태를 눈감아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당시 우리 민족이 입은 피해를 제대로 알려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일본 제국의 만행과 현재의 한일관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국민의 반일감정을 자극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히는 데 이용하려 한다면 이는 더더욱 잘못이다. 전범기업의 만행을 인식하도록 교육할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인데 굳이 인식표를 붙여 한일 양국 간 외교분쟁으로 비화할 우려를 자초할 필요가 있겠는가. 감정이 앞서 작은 일에 연연하다 큰일을 그르칠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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