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민이라는 이유로 당시 원주민들에게 배척 당한 기억이 있어 주민들이 폐쇄적인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을을 위한다고 하니 다들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동참해 줘 개선사업이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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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부터 농원마을 주민협의체를 이끌고 있는 임채갑(65)회장은 주거환경관리사업을 위해 주민과 구청 간 가교 역할을 도맡아 해 왔다. 협의체를 통해 모인 주민 의견을 전달하고, 구청 담당부서와 논의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인천시 연수구 농원마을은 주거환경관리사업이 진행 중이거나 마무리된 다른 동네에 비해 주민 참여가 돋보인 지역이다. 그 중심에는 2014년 구성된 농원마을 주민협의체가 있다.

 협의체는 마을 내 거주민뿐 아니라 마을 밖으로 이사 간 주민 중 토지·건축물 소유자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외부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농원마을 주거환경관리사업이 시작되면서는 기초조사 및 13차례에 걸친 워크숍으로 주민 참여를 유도했다. 마을 대표 조직으로서 마을계획 과정에 참여한 만큼 사업 과정에서는 자발적 주민감리단으로, 사업 완료 후에는 시설 유지 및 관리를 책임지는 주체로 활동한다.


 임 회장은 "구청에서 저층주거지 관리를 중심으로 주거환경관리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주민들이 모여 송월동 동화마을 등 인천과 수원 등 비슷한 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을 직접 답사했다"며 "지역마다 특성이 다르다 보니 우리 마을에 접목시킬 수 있는 부분은 뭐가 있을지, 어떤 부분이 먼저 진행돼야 할지 등 구청과 주민이 함께 고민한 것"이라고 했다.

 2014년 협의체가 만들어졌지만 운영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당시 마을 재정자립도가 낮아 협의체 구성원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투표용지부터 답사를 위한 주유비, 하다 못해 구청 담당자 등 손님에게 내 줄 커피 등 어느 것 하나 지원되는 것이 없었다. 2년 만에 회장이 몇 번이나 바뀌었고, 마을 개선을 위해 해결해야 할 주민 민원도 넘쳤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은 3년 가까이 회장직을 맡고 있는 임 회장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다. 아쉬운 마음에 이것저것 요구하긴 하지만 무료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을 잘 알아서다. 그런데도 임 회장은 주민들이 마음을 모아 준 덕분에 마을 개선이 진행될 수 있었다고 공을 돌린다.

 임 회장은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의견이 서로 안 맞는 것은 당연하고, 실제로도 도로 포장보다는 마을 슬레이트 지붕을 먼저 수리해야 한다는 등 의견 차이가 있었던 적도 여러 번"이라며 "그러다가도 사업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설득하면 결국에는 다 수긍해 주셨고, 주거환경개선사업 역시 주민 98%가 동의하면서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마을에는 번듯한 경로당이 지어졌고, 도로는 노인들도 다니기 쉽게 포장됐다. 불이 켜지지 않고 난방조차 되지 않던 노인정, 벽이 뚫려 바람이 드나들던 집 등이 눈에 띄게 개선되니 주민들에게 동기부여도 됐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남아 있다. 주민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는 도로에 매겨지는 세금, 그리고 여성의광장이 들어서면서 자주 어는 도로 등이다.

 과거 농원마을 조성 당시 흙벽돌집을 땅을 나눠 지으면서 날 일(日)자 모양의 길이 생겼는데, 여기에 사람이 다니다 보니 그 모양 그대로 도로가 됐다. 하지만 개인 땅이어서 도로에도 재산세를 내고 있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간신히 토지소유주와의 소송을 거쳐 현재 마을 주민 44명 앞으로 길을 되찾아 왔지만 언제 또 상황이 바뀔지 몰라 불안하다. 궁극적으로는 구나 시가 도로를 매입해 세금을 내지 않게 해 달라는 게 주민들의 바람이지만 아직 별다른 해결책은 없는 상태다.

 또 농원마을 앞 도로의 경우 여성의광장이 세워진 이후 햇빛이 들지 않아 겨울이면 자주 얼곤 한다. 여름에는 잘 드나들던 바람도 막혀 버렸다. 노인이 많은 농원마을 특성상 낙상사고 등 안전사고의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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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 회장은 "마을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구청 등과 지속적으로 논의해 개선해 나가야 할 문제인 만큼 우선은 주민 의견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뜻을 모으고 있다"며 "특히 도로 문제는 기관들이 신경을 써서 구도로 또는 시도로로 조성되기를 바라는 생각이 크지만, 모쪼록 어떤 방안이든 꼭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해진 농원마을 주거환경관리사업은 올해로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해서 협의체의 역할이 끝난 건 아니다. 여전히 마을 주민들을 한데 모으는 구심점인 동시에 주민들의 민원을 구에 전달하는 소통 창구 역할을 할 예정이다. 구 역시 새로 조성된 농원마을 경로당 2층 공동이용시설을 협의체에 내어주고 공동체 활동을 적극 독려하고자 한다. 구의 지원을 바탕으로 협의체는 농원마을 노인회와 협의해 주민 화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프로그램과 함께 수익 창출이 가능한 게스트하우스 등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협의체는 전국 각지에 흩어진 자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명절 등에 친구나 선후배를 모아 축제를 열고자 한다. 주민과 자녀들이 함께 마을 역사를 돌아보는 행사도 진행된다. 농원마을 축제는 가족뿐 아니라 마을 전체와 명절을 함께 보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57년간 돈독히 해 온 마을공동체가 앞으로도 이어지는 데 협의체가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도로 문제 등 협의체를 중심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도 많다.

 임 회장은 "주거환경관리사업을 통해 동네가 살기 편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벽이 무너지는 흙벽돌집이나 슬레이트 건물에 시멘트만 덧발라 생활하는 가구가 있는 등 곳곳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 있다"며 "농원마을 주민협의체 회장으로 있는 동안에는 주민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뭐든 도울 것이고, 앞으로도 주민과 함께 하는 협의체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사진=이진우 기자 ljw@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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