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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코레일 양평관리역장
"닷새마다 서는 장날 / 먹고 싶은 호떡 찐빵 / 오일장은 엄마의 꿈 / 고기장수 엄마 냄새 / 고기는 / 남에게 다 주고 / 남새만 남은 엄마 손" 시인 김용덕은 ‘오일장’에서 고기장수 엄마를 추억하는 진한 향수를 이렇게 노래했다.

 양평역 앞 물맑은 전통시장에서 오일장(3일, 8일)이 서는 날이면 우리 역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고객을 맞느라 여념이 없다. 다른 날보다 몇 배 많은 고객을 응대하노라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5일·10일에 열리는 인근 용문오일장도 사정은 엇비슷하다. 어렸을 적 어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대구 반야월오일장 이곳저곳을 구경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장에 가신 어머니를 애타게 기다리다 나도 몰래 잠이 든 날도 많았다. 장날엔 지역 주민뿐 아니라 서울이나 인근 지역에서 오일장을 구경하러 오는 나이 지긋한 중장년이 대부분이다. 오일장날이면 어김없이 양평역을 찾는 한 어르신은 장서는 날의 풍경과 생동감 있는 삶의 모습이 좋아 장날을 손꼽아 기다린단다. 평소 400여 개 점포를 갖춘 상설시장이지만, 장날에는 여기에다 200여 개 이상의 노점이 함께 어우러져 그야말로 대성황이다.

 있을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는 전통 오일장!

 양평오일장은 190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져온 역사 깊은 오일장으로, 인근 용문산, 청계산, 매봉산에서 캔 산나물, 약초와 채소, 과일 등 농산물이 주류를 이룬다. 옛날통닭, 돼지껍데기, 건어물, 무말랭이, 도토리묵, 메주, 씨앗, 묘목, 각종 생필품 정말 없을 건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시장을 구경하다 허기가 지면 녹두전, 애호박전, 메밀전병 등 각종 전을 파는 가게에서 인근의 유명 지평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사람도 더러 있다. 빠질 수 없는 양평 대표 음식은 단연 해장국이다. 양평해장국을 먹으러 장을 찾는 사람도 꽤 많다. 건어물가게 아주머니가 목청 높여 손님을 부르고, 건너편 어물전 아저씨의 걸걸한 목소리가 장터에 울려 퍼진다. 어물전 모퉁이에 팔순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는 산나물을 다듬으며 조용히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곳곳에서 물건 값을 놓고 흥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오일장은 흥정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깎아주면 좋고 아니어도 그만인 정이 묻어나는 거래의 언어들….

 볼 것도 먹을 것도 많은 시끌벅적한 장터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사람 냄새나는 그런 곳이다. 오래전부터 오일장은 사람들이 서로 필요한 물건을 사고팔기 위해 모이던 곳으로 그 지역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집에서 수확한 채소나 과일, 곡식 등 먹거리뿐 아니라 농기구, 장독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갖고 나와 팔고, 때론 원하는 물건을 맞교환하는 물물 교환의 장소였다. 단순히 물건이 오고가는 장소가 아니라 인근 마을 사람들이 모여 소식을 전해 듣고 안부를 나누는 ‘이야기와 만남의 장’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조선 전기 무렵에는 보름이나 열흘, 닷새, 사흘 등 지역마다 장이 서는 간격이 일정하지 않았으나,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오일장이 일반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문학 작품에서도 오일장이 장소적인 소재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효석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와 같은 작품 속에서 오일장이 소설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렇듯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오일장도 빠르게 변해가는 시간 속에 시장의 모습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전통시장, 특히 5일에 한 번밖에 열리지 않는 오일장이 우리 고유의 시장 풍속으로 계속 남아 주길 바라는 마음은 비단 나만일까.

 코레일은 2009년부터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국 주요 장터를 중심으로 전통시장과 기차 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팔도장터 관광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느긋하게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보는 양평오일장은 여전히 훈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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