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유럽과 중남미를 파탄으로 이끈 현금 살포형 복지가 어느새 우리나라에서도 보편적인 현상으로 정착된 듯하다. 출산 장려수당, 아동수당, 무상교복, 청년 구직활동 지원금, 청년수당, 경로수당, 보훈수당 등 열거하기조차 힘든 온갖 복지가 경쟁적으로 도입되고 있다. 급기야 집안 형편에 상관없이 수학 여행비를 지원하는 기초단체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지자체들의 예산 규모는 급속히 늘어난 반면 재정자립도는 악화일로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복지를 강조하는 정부의 ‘의도적 미(未)통제’로 복지예산 만큼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풍선처럼 팽창해가고 있다. 늘 그렇듯 정치 포퓰리즘이라는 불순한 동기와 검증 없는 낭비적 지출로 재정건전성이 훼손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엔 복지의 정치화를 막고, 국가재정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모든 복지를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단일화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개념은 놀랍게도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밀턴 프리드먼에서 페이스북 창업주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4차 산업시대 도래에 따른 대규모 장기실업과 부의 편중을 해소하는 대안으로도 급부상하고 있다. 2016년 스위스에서는 성인에게 매달 300여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투표가 이뤄졌는데 76.9%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핀란드에서는 2017년부터 2년간 2천 명에게 매달 70여만 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다.

우리 사회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경기도와 경기연구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함께 진행하는 ‘기본소득과 경기도’ 권역별 토론회가 안산·부천·안양·과천 등 7개 시 공무원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작금의 복지가 갖는 광범위한 사각지대 발생, 수혜자들이 겪는 상대적 박탈감, 정치 포퓰리즘으로 악용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이 절실한 시점에서 이번 토론회가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하겠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기본소득이 자칫 더 나은 삶을 위한 근로 의지까지 훼손하지 않는 적정 수준의, 합리적인 모델을 만들어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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