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도, 춥지도 않았던 1956년 어느 날. 인천시 연수구 청량산 자락 포도밭 곳곳에는 엉성하게 쌓아 올린 흙벽돌집이 들어섰다.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등지에서 피란한 이들의 살림집이었다. 한 가구당 허락된 공간은 33㎡ 남짓이었다. 그렇게 총 50가구는 ‘흙벽돌집 10평’의 신세를 함께 했다.

농원마을은 한동안 ‘은둔’의 마을이었다. 구민들조차 청량산 인근에 피란민들의 작은 마을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소외된 주민들은 지은 지 40여 년이 지나도록 바람이 숭숭거리는 흙벽돌집에서 생활했다.

주민들은 마을을 바꿀 방도를 스스로 찾아나서야 했다. 마침내 구가 2000년대 후반 농원마을을 주택재개발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떠나고 새로운 건물과 사람들이 들어서는 재개발 방식을 원하지 않았다.

구와 주민이 함께 고민해 찾은 방식이 바로 ‘저층주거지 관리’를 중심으로 한 주거환경관리사업이다. 주민들은 워크숍을 13차례나 열어 마을 현안을 분석한 후 우선순위를 매겨 구에 전달했고, 구는 이를 받아들였다.

척박한 환경에서 시작했던 농원마을은 2015년부터 총 37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마을’로 변하고 있다. 주민들 역시 정착 당시 배척됐던 아픈 기억에 희망의 빛깔을 새로 칠하고 있다. 주민 의견이 주거환경관리사업에 적극적으로 반영된 사례인 만큼 주민들은 ‘앞으로도 우리 마을은 우리가 만들어 가자’는 꿈을 꾼다.

김희연 기자 kh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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