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돌연 철수했다.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지난해 9월 개소한 남북연락사무소가 북한의 일방적 통보에 6개월 만에 파행에 이르게 된 것이다. 참으로 유감스럽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남북연락사무소는 그동안 주 1회 소장 회의를 열었으나 이달 들어 4주째 무산됨으로써 그 징조를 보여 왔다. 북측의 이런 일방적 조치가 향후 남북관계는 물론이고 한반도 정세에도 먹구름을 몰고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감이 들게 한다. 다만, 북측이 인력을 철수시키면서도 "남측사무소의 잔류는 상관하지 않겠다"며 여지를 남긴 점은 막다른 상황까지는 가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돼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북의 이런 돌발 조치는 남북경협 사업들에 있어 공전이 지속되고 있는 데 대한 항의와 불만의 표시로 분석된다. 남한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너무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은 대외 선전 매체를 통해 "남조선 당국은 말로는 북남선언 이행을 떠들면서도 실지로는 미국 상전의 눈치만 살피며 북남관계의 개선을 위한 아무런 실천적인 조치들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미국의 대북 제재 틀에서 벗어나 남한이 주체적이고 주도적으로 남북경협에 임하라는 주문인 것이다.

 남북경협에 속도를 내고자 하는 북측의 입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우리 측 사정도 북한은 헤아려야 한다. 북에 대한 제재가 실질적으로 미국 주도 하에 행해지고 있고 유엔 등 국제사회가 참여해 결의했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대놓고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을 북한 당국도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남과 북이 의기투합해 상생의 길을 나아가자 해도 이렇다 할 상황 변화 없이는 국제사회로부터 어떠한 결정도, 운신도 할 수 없는 것이 남과 북이 처한 현주소이자 주어진 운명임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당국이 작금의 이런 사정을 헤아린다면 남한을 상대로 압박을 가하거나 긴장을 조성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번영을 전제로 중간자와 조정자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남한 정부의 의지에는 어떠한 변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나아가 미국과의 대화를 이른 시일 내 다시 모색하길 권한다. 우리 정부도 고위 당국자 간 대화를 통해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하며, 필요하다면 정상 간 대화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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