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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권홍 원광대학교 교수
정치권은 내년에 있을 국회의원 총선거에 적용될 기준인 선거법, 그 중에도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도입을 두고 시끄럽다.

 민주당과 야 3당은 지역구 225석, 비례대표 75석의 300명 국회의원 정수를 유지하되 연동률을 50%로 해서 군역별로 의석을 배분하는 것으로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

 그러자 한국당은 오히려 비례대표를 폐지하고 지역구만 270석으로 하는 정반대 주장을 하고 나섰다. 연동형 비례대표를 주장하는 소수 야당의 근거는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와 결과인 의석수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의당이 10%의 득표율을 얻었다면 총 의석수 300석 중 30석을 차지하는 것이 국민의 뜻에 따른 의석 배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국회의원 선거가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의 의사가 적절히 반영돼야 한다.

 하지만 선거제도라는 것은 정의·부정의의 문제나,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현실적 타협의 산물이다. 그리고 소선거구제, 다수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이상 각 선거구에서 1등을 차지한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는 수용할 수밖에 없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자독식 방식으로 인해 득표는 힐러리가 당선은 트럼프가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문제는 있지만 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한국당의 주장처럼 비례대표를 부작용만 있는 무용한 제도로 치부할 수는 없다. 정치자금을 받거나, 당 대표 또는 유력 정치인에 의해 자의적으로 운용됐으며, 현재의 고정식 정당명부제가 국민들의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것은 맞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을 양성한 책임 주체는 정치권이다. 스스로 자백을 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비례대표제도는 전문성을 가진 정치신인을 발굴한다는 순기능이 충분히 있다.

 비례대표 없이 소선거구제만을 유지하겠다면 현역 정치인, 지역의 유력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선거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다시 말해 기득권을 버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치열히 논의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동형 비례대표제도 한 가지로 해결되는 것인가.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국회의 단원제와 양원제, 국회의원 정수, 양당제와 다당제의 장단점, 소선거구 다수대표와 중대선거구 소수대표제 등 통치구조 전반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오히려 쉬운 문제다.

 국민들은 잘 몰라도 되는 난수표 같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아주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들의 의사를 가장 적합하게 반영하겠다면서 국민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를 만드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에 한 석의 국회의원 의석수를 늘리는 것도 불가능한 현실에서 연동형 비례대표라는 새로운 공식의 도입이 복잡한 정치적 쟁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시급히 필요한 것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이다. 여야는 어떻게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것인지 먼저 고민해야 한다.

 아쉽게도 정치권은 국민을 앞에 내세우면서 국민들의 진정한 의사는 모르고 있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 양원제에 대해 논의하기 어렵다면 우리나라에서 양당제 또는 다당제 중 어떤 제도가 타당한지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현역에 극단적으로 유리하고, 국민의 대표보다는 지역의 대표가 되어버리는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으로 중대선거구를 도입하는 것은 어떤지에 대한 공론화도 시작돼야 한다. 그러면서 비례대표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

 당장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오니 정치권은 급해졌고, 다급하게 찾은 방법이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다. 하지만 한국당이나 여당인 민주당의 본심은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의석수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른미래당과 평화당은 또 다른 당리적 주장을 하고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더라도, 선거구별 인구편차 2:1에 맞는 지역구 획정, 인구 감소지역의 선거구 범위, 역사·문화·경제적 유사성을 갖는 권역의 결정 등 복잡하고 어려운 쟁점들이 남아 있다.

 기본권보다 개정이 어려운 것이 통치구조다.

 본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논의는 물론 여야 합의도 없이 말단적인 제도 변화로는 답을 찾기 어렵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는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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