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추락사고로 무인도로 떠내려 온 미국인 척 놀랜드가 4년을 척박한 환경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여생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였다. 알려진 대로 무인도는 문명의 이기(利器)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공간이다. 인간이라면 극단적 소외감과 고독감에 몸서리친다. 그는 생(生)의 동반자로 생각한 여자의 얼굴을 그리고 되새기며 1천500일을 무인도에서 살아 남았다.

 그런데 가까스로 무인도를 탈출해 문명의 세계로 돌아 온 그의 앞에 닥친 현실은 상상 밖이었다. 여자는 결혼해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됐다. 그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탈출이 불가능한 섬에서 절망했다. 나무에 목을 매려 했지만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죽지도 못했다. 삶이 나의 통제권 밖에 있음을 알게 됐다. 섬에서는 그녀와 (마음 속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버텼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척 괴롭다. 그녀의 삶에 대한 통제권이 내게 없음을 잘 안다. 결국 나는 계속 숨을 쉴 수밖에 없다. 내일의 태양은 어김없이 떠오르니까. 그녀는 그녀의 가정에 머물러야 하고 나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파도가(운명이) 앞으로 내게 무엇을 가져다 줄 지 아무도 모른다."

 비(非)자발적으로 남태평양의 한 섬에 던져진 척 놀랜드의 일화를 다룬 영화 ‘캐스트어웨이’의 일부다. 이 영화는 인간이 무엇 때문에 삶을 버텨 내고 있는 지 사람이 없는 무인도를 통해 잘 드러낸다.

 영화의 의도는 ‘인간’이라는 글자를 만든 선인들의 의도와 닮아 있다. 사람 인(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는 형상이고 사이 간(間)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했다. 하지만 그 기댐은 사랑과 믿음, 배려와 헌신이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 난다. 가까이 있다고 매일 본다고 해서 관계 속에서 ‘기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기댐은 물질적 ‘의존’과는 다르다. 무엇을 바라고 전략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존재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족되는 그런 특성이 있다. 전쟁 통을 방불케 하는 현대인의 삶에서 척 놀랜드 식의 기댐이 필요한 이유다. 설사 이 관계에서는 기대던 한 편이 떠났다고 해서 배신이라고 하지 않는다. 떠남과 이별까지도 수긍하는 기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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